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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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의 사과, 곡해할 필요 없는 까닭

D.H.Jung 2012. 12. 1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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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가 부른 건 정말 ‘반미 랩’이었을까

 

언론에서는 여전히 싸이가 지난 2002년과 2004년 했던 랩과 퍼포먼스를 ‘반미’라고 표현한다. 미국 언론이야 자신들의 입장차가 있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해도, 우리 언론 역시 ‘반미’라 하는 것은 어딘지 잘못된 표현처럼 여겨진다. 물론 내용이 크게 보면 ‘미국에 반대’한 것이니 반미란 표현이 그다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상황에 대해 특정 미국인을 비판한 것을 두고 ‘반미’라는 국가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건 너무 구태적인 국가주의적 발상이 아닐까.

 

사진출처:YG엔터테인먼트

싸이는 여기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반미가 아니라 반전의 의미였다”는 것. 미국을 비판하는 노래를 했다고 반미라 부른다면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던 무수히 많은 미국의 가수들(이를테면 밥 딜런 같은), 이라크 전에 반대했던 미국의 많은 저널리스트들 역시 반미주의자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이들의 행위를 반전이라 부르지 반미라 부르지 않는다.

 

싸이의 랩과 퍼포먼스는 무작정 벌어진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유와 정황이 있다. 2002년 미군 탱크를 가지고 나와 땅바닥에 내동댕이친 퍼포먼스는 당시 우리네 여중생 미선, 효순양이 미군 탱크에 치여 사망한 사건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당시 가해자였던 장갑차 운전병 마크 워커와 관측병 페르난도 니노는 미 8군 군사법정에서 차례로 무죄 평결을 받고 간단한 사죄의 말을 남긴 채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또 2004년 싸이가 부른 랩은 당시 선교사 김선일 씨가 이라크 무장괴한에 피랍되어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넥스트 신해철이 발표한 ‘디어 아메리카’에 함께 참여해 파병 반대와 전쟁을 초래한 당시 부시 정권을 비판한 것. 이처럼 당시의 정황과 비판의 대상을 명확히 하면 싸이의 랩과 퍼포먼스를 그저 ‘반미’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게다. 실제로 당시 부시 정부의 이라크전을 반대한 지식인들도 상당히 많았고(<화씨 911>의 마이클 무어 같은) 그걸 지지하는 미국인들도 많았지 않은가.

 

싸이의 반미가 아닌 반전 행위는 예술가들이라면 당연한 일이고 그 표현 또한 제한될 이유가 없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싸이의 행위는 비난 받을 일이 아니고 의식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회의 문제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 하는 것이 아니라 가수로서 참여하려 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한국 대 미국이라는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 때문에 곡해가 생긴다. 싸이가 비판한 것은 불특정 다수의 현재 모든 미국인이 아니고 2002년과 2004년 시점의 부시정권과 당시 사건에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던 몇몇 주한미군들이다. 이 특정 과거의 일을 소환해와 ‘반미’라 일반화 시키는 것은 너무나 큰 곡해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표현은 지나칠 정도로 과격했다. 당시 상황이 그만큼 격앙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이가 반복해서 사과한 것은 당시에 자신이 했던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과잉된 표현’이다. "선동적이고 부적절한 언어를 썼던 것에 대해 깊이 후회하고 있다. 내가 쓴 단어들로 말미암아 상처 받은 모든 분께 사과한다."는 것. 싸이 측은 또 "당시 공연 자체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 과도한 단어를 사용해 어느 누구라도 상처를 받게 했다면 그런 여지를 둔 부분에 대한 사과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것은 정확히 말하면 사과라기보다는 해명에 가까운 것이다. 굳이 ‘후회’니 ‘사과’니 하는 단어를 쓰는 것은 이 사안에 대해 정서적인 대응을 하기 위한 것이었을 게다. 중요한 것은 싸이의 이번 사태가 현 달라진 국가를 뛰어넘는 문화 교류라는 새로운 흐름과 구태적인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사고방식의 부딪침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세상은 이미 지구촌화되어 한국말로 부른 노래가 미국 빌보드 차트 2위에 랭크되는 시대지만, 여전히 국가 대 국가라는 잣대로 반미니 친미니 하는 옛 단어들이 자꾸만 끄집어 올려진다.

 

국가를 뛰어넘어 바라보면 ‘반미’라는 국가를 나누는 표현은 ‘반전’이라는 지구를 하나로 묶어내는 표현으로 바뀔 수 있다. 국가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지구촌의 잘못된 일들에 반대하는 일을 자꾸만 국가주의로 몰아넣는 일은 다분히 퇴행적인 행위다. 이렇게 국가주의를 뛰어넘는 시각은 그래서 향후 한류 같은 국제적인 문화교류의 과정에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일이다. 싸이가 부른 건 ‘반미 랩’이 아니다. 싸이가 사과한 건 당시 했던 반전 퍼포먼스 그 자체가 아니다. 곡해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