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드라마스페셜' 예산 삭감, 돈이 전부인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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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스페셜' 예산 삭감, 돈이 전부인가

D.H.Jung 2012. 12. 1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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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스페셜>에도 보이는 양극화의 그림자

 

KBS <드라마스페셜>은 우리 드라마에 남은 유일한 단막극의 공간이다. 시청률은 낮은 편이다. 3%에서 5% 남짓. 하지만 편성시간대를 생각해보면 그다지 낮다고 만도 할 수 없다. 일요일 밤 11시45분. 사실상 이 시간대에 드라마를 챙겨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게다. 그러니 어찌 보면 이 스페셜한 드라마들은 편성에 있어서는 홀대받고 있는 형편이다.

 

'드라마스페셜'(사진출처:KBS)

그런데 이 <드라마 스페셜>의 예산이 삭감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회당 8천만 원 남짓의 예산에서 그 절반을 뚝 떼서 회당 4천만 원의 예산으로 줄인다는 것. 이건 사실상 드라마를 만들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이런 저런 캐스팅을 하는 데만도 3천만 원 가까운 예산이 들기 때문이다.

 

1억도 안 되는 예산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스페셜>의 면면을 보면 그 실험성이나 작품성에서 꽤 의미 있는 성취를 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번 시즌에 방영된 <불이문(KBS 우수 프로그램상 수상)> 같은 작품은 작금의 드라마 환경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잔잔하고도 아름다운 화면 속에 깊은 삶의 의미까지 담아낸 수작이었고, <습지생태보고서(이달의 PD상 수상)>는 작금의 청춘들의 현실을 재기발랄한 연출로 보여준 좋은 작품이었다.

 

또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받은 <스틸사진>은 경쟁적인 현실 속에서 이제는 젊은 날의 순수가 스틸사진 속에서만 존재하는 답답한 현실을 잘 포착한 작품이었고,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불륜과 죽음을 엮어놓은 문제작이었으며, <기적 같은 기적>은 불치병을 가진 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소재로 삶과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괜찮은 시도를 선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들 작품들이 몇 배의 투자가 이뤄지는 장편 드라마들의 화려한 색깔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바로 이 돈의 논리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는 점(그래도 여전히 가난하지만)이 이들 드라마가 무언가 참신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숨통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드라마들의 예산을 절반이나 삭감한다는 것은 그나마도 어려운 살림에 자존심과 뜻 하나로 버텨내고 있는 이들 드라마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행위다.

 

경제논리가 이제 이들 드라마에도 드리워지고 있는 양상이다. 그것을 말해주는 건 올해 KBS 드라마가 역대 최고치의 수익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KBS 드라마는 광고매출, 판권수출, MD상품판매, OST수입 등 올해 약 2천3백억 원의 수익을 냈다고 한다. 시청률이 좀 낮았던 <사랑비> 같은 작품은 해외에서 최고가의 판권수출을 이뤘고, <각시탈>처럼 해외 판매가 거의 없었던 작품은 높은 시청률로 광고 완판 수익을 올렸다는 것. 이 상황에 단막극의 예산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인 접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단막극은 알다시피 눈으로 보이는 수치로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다. 즉 신인작가들의 등용문이기도 하고, 신인 연출자들은 단막극을 통해 경험을 넓혀 결국 그 성과를 장편에서 보이기도 한다. 지난 2월에 방영되었던 <보통의 연애> 같은 작품은 대표적인 사례다. 비록 3%대의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연출, 대본, 연기의 삼박자를 두루 갖춰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연출한 김진원 PD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를 통해 그 진가를 보여주었다. 또 이 작품을 쓴 이현주 작가는 현재 <학교 2013>의 공동 집필에 참여하고 있다.

 

경제논리로만 바라보는 것으로 우리 사회가 겪게 된 것은 결국 극심한 양극화다. 올해 대선에서 경제민주화가 최대의 이슈로 떠오른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드라마스페셜> 같은 가난한 드라마들에게 똑같이 드리워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KBS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아닌가. 가난한 여건에도 다양성을 시도할 수 있는 바로 그 숨통이 있기 때문에 장편 드라마들에 새로운 동력이 생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양극화의 양상을 드라마에서조차 확인하게 되는 이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