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내 딸 서영이' 작가의 기분 좋은 강박관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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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 서영이' 작가의 기분 좋은 강박관념

D.H.Jung 2013. 2. 22.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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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이>, 악역들마저 소통하려는 강박의 이유

 

“그래도 한때 사위였는데. 사위한테 부사장님, 부사장님 한 것도 모자라서... 너 우리 아버지 과거 알지? 그 수치스런 얘길 다 했단다 우리 아버지가. 정말 미치겠다. 우리 아버지 땜에.” 서영이(이보영)의 친구에게 하는 이 대사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아픔 그리고 사랑의 감정이 뒤엉켜 있다. 제 아무리 자신에게 상처를 준 아버지지만, 그 아버지의 치부가 한 때 사위였던 강우재(이상윤)에게까지 드러나는 건 영 싫다는 거다.

 

'내 딸 서영이'(사진출처:KBS)

그녀는 아버지 욕하고 뭐라 할 권리는 자신과 상우 그리고 엄마한테만 있다고 아버지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이 말은 거꾸로 말하면 다른 사람이 아버지 욕하는 건 싫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아버지 이삼재(천호진)가 사위에게 자신의 치부까지 드러내며 서영이를 변호하려 했다는 사실은 이토록 서영이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녀 앞에서 “미안하다”고 할 뿐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는 아버지의 진심을 봤기 때문이다.

 

<내 딸 서영이>가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은 이렇게 상대방의 진심을 보게 되는 계기를 통해서다. 강우재가 서영이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된 것도 이삼재가 자신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서영이의 진심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진심이 전해지는 방식은 그래서 흥미롭다. 이삼재는 강우재에게 서영이의 진심을 전해주고, 이제는 강우재가 서영이에게 아버지의 진심을 전해준다(그렇게 단서를 주게 된다). 여기서 강우재는 양자를 이해하고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누군가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입장과 상대방의 입장이 역전됨으로써 그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내 딸 서영이>가 50% 가까운 시청률을 내는 원동력이다. 이심전심과 역지사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공감과 소통’이다.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인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이유가 있어 저지른 실수나 오해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한다. 그로 인해 뒤틀어진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게 되는 건 인지상정일 게다.

 

바로 그런 이심전심과 역지사지의 자세를 가진 인물들 때문인지, 이미 서영이의 주변 인물들은 거의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 “나는 서영아. 너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 내가 너였다면 못 이겨냈어. 그 상황을 버텨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눈물이 나.” 이렇게 말하며 누구나 실수는 한다며 “그러니까 니가 먼저 너를 용서해.”라고 하는 강우재의 말처럼 이제 서영이가 용서해야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뿐인 지도 모른다.

 

갑자기 은호라는 아이를 서영이가 변호하는 에피소드가 들어온 것은 바로 이 남은 문제를 풀어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은호야 아버지는 니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 니가 죽으려고 했었던 거 어떻게 알았냐구? 나도 그랬었거든 아버지 땜에. 근데 하루 하루 버티니까 시간이 가고 살 날이 오더라.” 은호에게 너는 아버지 땜에 사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서영이는 사실 자신(이 과거 아버지를 부정했던 이유)의 이야기를 했던 셈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어요. 내가 죽지 않으면 아버지를 죽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은호의 말 역시 서영이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서영이와 은호의 이야기는 그래서 어쩌면 자신이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은호의 에피소드는 은호를 통해 서영이가 자신을 보게 함으로써 결국 스스로 자기 자신을 용서하라고 독려하고 있는 셈이다.

 

<내 딸 서영이>의 갈등을 풀어내는 방식은 심지어 강박적인 느낌마저 준다. 예를 들어 서영이의 과거를 폭로한 정선우(장희진)마저 서영이를 찾아와 갈등을 풀어내기도 한다. 사무실을 찾아온 정선우는 이미 자신이 서영에게 잘못을 사죄했고 강우재와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는 걸 쿨하게 얘기한다. 그러자 서영이는 희미하게 웃으며 “제가 정변호사님 위로해줘야 돼요?”하고 되묻는다. 둘 사이에 남은 앙금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여유가 생겼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건 <내 딸 서영이>의 작가가 가진 캐릭터에 대한 태도 덕분이다. 그토록 많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들이 저질러졌지만 이 드라마에서 절대적인 악역이 잘 보이지 않는 건 작가가 이처럼 끝까지 캐릭터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잘못과 실수를 저지르지만 거기에는 저 마다의 이유가 있게 마련이라는 것은 이 작품의 주제의식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이 작가의 캐릭터를 대하는 태도이기도 한 셈이다.

 

이상우(박해진)와 헤어지게 된 강미경(박정아)이 결국 서영이와 마음을 풀게 되는 과정에서도 작가의 이 기분 좋은 강박이 드러난다. 여느 드라마였다면 과연 강미경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이 상황을 선선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미경이 역시 신분을 속이고 병원에서 지내다 들통 남으로써 서영이의 입장을 고스란히 겪었다는 점에서 역지사지를 통한 화해의 가능성을 이미 갖고 있던 인물이다.

 

물론 이건 현실에는 일어나기 어려운 판타지이자 작가의 강박이다. 한 번의 실수나 오해로 뒤틀어진 관계가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역지사지의 시선으로 단박에 풀어질 수 있는 호락호락한 현실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이 강력한 소통에 대한 판타지로 대중들의 시선을 끌어 모은다. 소통에 대한 이 강력한 욕구는 그래서 어쩌면 쉽사리 소통되지 않는 현실의 안타까움을 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