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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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의 법칙', 석기 체험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

D.H.Jung 2013. 3. 2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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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 체험이 보여준 <정글>의 새로운 가능성

 

<정글의 법칙> 뉴질랜드편에서 병만족은 왜 굳이 채텀섬에 들어가 석기체험이라는 고행을 자처했을까. 칼도 없고 옷도 없고 가방도 통째로 없이, 동굴을 잠자리 삼아, 돌과 나무, 풀과 조개 같은 자연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이용해 살아남는 도전. 이 도전은 지금껏 정글 자체가 도전 상황이었던 <정글의 법칙>과는 사뭇 다른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이것은 아마도 뉴질랜드라는 공간이 기존의 정글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기 때문에 선택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뉴질랜드는 물론 천혜의 자연이 심지어 신비롭기까지 해 수많은 판타지 영화의 배경이 될 정도지만, 분명한 건 다른 정글에 비해 상대적으로 확연히 현대화되어버린 공간이라는 점이다.

 

보통 <정글의 법칙>은 앞부분에 정글 생존을 그리고, 뒷부분에 그 공간의 생존비법을 알고 있는 부족들을 찾아가 그들의 생존 노하우를 배우고 또 서로 소통하는 공존을 그리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뉴질랜드편이 아예 첫 회에 마오리족을 찾아가 생존비법을 전수받는 이른바 생존캠프로 보여준 것은 이미 이 부족이 모두 현대화되었기 때문이다.

 

채텀섬이라는 조금은 뉴질랜드 본토에서 떨어진 섬을 찾았던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그 정도로 깊게 들어가야 인적 없는 공간을 찾아 <정글의 법칙> 본유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초심을 내세우고 석기체험을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이 현대화된 공간 속에서(물론 채텀섬은 야생이지만)도 야생의 모습을 의지적으로 그려내어 <정글의 법칙>이 본래 갖고 있는 의도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 의도는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그 힘겨움이 주는 양가감정, 즉 문명의 고마움과 동시에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이 조금은 인위적인 도전 설정으로 이뤄진 석기 체험은 <정글의 법칙>에 어떤 가능성을 보여줬을까. 그것은 <정글의 법칙>의 가치가 정글이라는 공간이 주는 힘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도전과 체험을 하려는 의지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 석기시대로 돌아가 생존해보려는 김병만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고, 이러한 하나의 생존 게임 같은 설정 속에서도 뉴질랜드 채텀섬이 가진 천혜의 자연공간은 변화무쌍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뉴질랜드의 날지 못하지만 전광석화처럼 달리는 런닝새 웨카를 잡기 위한 병만 족장과 정병장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냈다. 역시 족장다운 순발력과 경험으로 웨카를 척척 잡아내는 병만 족장과 달리 의욕 충만 정병장 정석원은 팬티 바람에 포복을 하면서도 연실 포획에 실패하는 모습으로 큰 웃음을 주었다.

 

김병만은 웨카를 잡기 위해 가시덤불 속으로 뛰어들어 얼굴에 가시가 박히면서도 “6인분 잡아야 되거든”하는 말로 족장으로서의 책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집착하며 좇는 그들을 놀리기라도 하듯 거꾸로 동굴을 찾아든 웨카는 그 자체로 돌발적인 상황극을 만들어냈다. 결국 동굴 속에 들어온 웨카를 잡아낸 정석원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이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조개를 잡고 전복을 발견해낸 박보영과 주변이 거대한 흑전복과 밤송이보다 큰 성게밭이라는 걸 알게 된 병만족은 그 자체로 순식간에 자신들을 감싸고 있는 자연의 풍요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냥 웃음이 나오는 맛이네요”라고 말하는 박보영처럼, 소라를 잡아먹고 흑전복버거(?)를 구워먹고 천연의 신선한 성게 내장을 즉석에서 꺼내먹는 그 장면은 그 어떤 먹방보다도 보는 이들의 식욕을 자극하지 않았을까.

 

석기 체험이라는 고행에서도 웃음을 찾으려는 노력은 <정글의 법칙>이 결국은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그 위치를 명확히 하는 일로서 중요한 것이다. 반복적으로 사용된 <레미제라블>의 OST는 하루아침에 거지꼴이 되어 혈거인으로 고생하는 병만족의 장면과 겹쳐져 페이소스 있는 웃음을 제공했고, 정석원의 OST로 활용된 군가 또한 그 캐릭터를 잡아주는데 있어 적절했다 여겨진다. 또 미끄러운 돌 위에 미끄러진 박정철과 노우진이 즉석에 보여주는 몸 개그는 힘겨운 석기체험이라는 미션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정글의 법칙> 초심을 떠올리게 했다.

 

<정글의 법칙>은 리얼리티 논란으로 많은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석기체험이 보여주는 그 의지와 그 속에서 느끼는 의미 그리고 힘겨움만큼 커지는 즐거움은 여전히 <정글의 법칙>이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걸 증명해주었다. 논란이 벌어지기 이전에 시도된 것이지만 석기 체험 도전은 그래서 어찌 보면 <정글의 법칙>이 처음 아프리카의 악어섬에 들어가 보여주었던 그 초심을 의지적으로 확인한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실로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