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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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네모난 세상

다시 핀 들국화, 그 향기 더 강렬해졌다

D.H.Jung 2013. 4. 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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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만에 다시 행진하는 들국화

 

들에서 모진 바람을 버텨온 탓일까. 국화 향은 더 진해졌고 더 강렬해졌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외치고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들국화. ‘인제는 돌아와 대중 앞에 선’ 들국화는 서정주의 절창만큼이나 원숙해졌다. 젊은 시절 거칠었던 야성은 그 긴 시간을 거치며 그 강렬한 힘 속에 부드러움을 갖추게 되었고, 그들이 노래하는 가사는 도발적이면서도 인생의 깊이가 더욱 느껴졌다. 합정동 인터파크 아트홀에서 열린 ‘다시 행진’이라는 콘서트(4일-14일)는 그 제목처럼 들국화를 27년 만에 돌아와 다시 출발점에 서게 했다.

 

'들국화'(사진출처:컴퍼니F)

가사의 진정성이란 가수의 삶이 거기에 그대로 겹쳐질 때 담겨지는 법.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콘서트의 첫 곡 ‘행진’은 그들이 살아낸 삶을 미리 예시한 곡처럼 그 가사가 새록새록 피어났다. 아마도 1985년 발표됐던 젊은 시절 들국화의 이 노래에 발을 동동 굴리며 그 행진의 설렘을 느꼈던 팬들이라면 그 가사가 들국화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이야기라고 여겼을 것이다. 30여 년의 세월을 단숨에 꿰뚫는 힘. 그것이 바로 노래의 힘이 아니던가. ‘헤어진 후에’, ‘제발’, ‘사랑일 뿐이야’, ‘그것만이 내 세상’ 같은 명곡들은 그 세월의 벽을 허물어뜨렸다.

 

20대 청춘들에게나 이제는 머리가 희끗해진 중장년들에게나 들국화의 노래는 여전히 청춘의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꿈이 있으면 나이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전인권은 여전히 꿈꾸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꿈을 꾸고 다시 모여 다시 무대로 돌아오고 다시 행진하는 데는 긴긴 시간이 필요했다. 너무 강렬한 힘을 가진 와인은 바로 따면 거칠고 쓰기만 하지만 오랜 시간 묵혀두고 꺼내면 한없이 부드러워지고 깊어지는 것처럼, 들국화는 어쩌면 그 대기만성의 시간을 기다려왔던 것처럼 보였다.

 

전인권의 목소리는 여전히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읊조리는 듯한 저음에서 쇳소리를 느낄 수 있는 고음까지 단번에 치솟아 오르는 쾌감을 선사했고, 최성원의 부드러움은 여전히 속삭이듯 관객의 귀를 간지럽혔으며, 주찬권의 드럼은 여전히 마치 장작을 쪼개듯 강렬하면서도 절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여전히’ 속에는 원숙미가 더해졌다. 공연 중간 중간 툭툭 던지는 농담 속에마저 인생의 깊이가 묻어나듯.

 

“예전에 다투고 헤어졌던 거 후회하지 않으세요?” 한 관객의 질문에 주찬권이 던진 “헤어진 후에, 이별이란 없는 거야.”라는 답이나, 한 젊은 관객이 “젊었을 때 꼭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게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전인권이 “고생하세요”라고 던진 답변이 관객들을 공감시킨 것은 거기에 자신들의 삶을 통과한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찌 말 뿐이랴. 들국화의 곡들은 마치 부흥회의 연설처럼 강하고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담겨있었다. 27년만의 신곡 ‘노래여 잠에서 깨라’는 그래서 우리네 가요계에 던지는 도발이면서도 그 안에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꿈과 희망이 들어있었다.

 

다시 돌아와 행진하는 들국화의 이 노래를 요즘 시쳇말로 떠도는 ‘힐링’으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너도 나도 ‘힐링’이라 떠드는 탓에 그 단어가 가진 힘이 희석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들국화의 노래 속에는 넘어진 이들을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것은 위로이고 힘이고 격려이며 도전이고 꿈이다. 들에서 오래도록 시간을 기다려온 국화꽃이 피었다. 그 향기는 더 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