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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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700회에 물갈이 예고? 이것이 '개콘'의 저력

D.H.Jung 2013. 6. 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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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회 잔치에 701회를 준비하는 <개콘>

 

700회. 연수로 무려 14년. <개그콘서트>는 그 수치만으로도 이미 대단하다. 물론 이 수치는 1980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30여 년이 넘게 방영된 장수 예능 <전국노래자랑>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전국노래자랑>의 1년과 <개그콘서트>의 1년은 그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트렌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개그라는 소재의 특성 때문이다.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고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며 당대의 현실 또한 세심히 살펴야 한다. 그래야만 대중들과의 공감대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14년이 대단할밖에.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그런데 이 수치만으로도 대단한 700회 특집에 즈음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박지영 PD는 대대적인 물갈이가 있을 것을 예고했다고 한다. ‘생활의 발견’, ‘거지의 품격’ 같은 한때 가장 뜨거웠으나 이제는 식어버린 개그를 종영시킨 것처럼, 앞으로도 코너 물갈이를 본격화하겠다는 것. 이것은 최근 <개그콘서트>에 제기되고 있는 위기설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박지영 PD는 “700회보다 701회가 더 중요 하다는 게 제작진의 생각”이라고 했다고 한다. 지당한 얘기다.

 

<개그콘서트>가 무려 14년을, 그것도 그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뜨거운 예능의 중심에 서서 버텨낼 수 있었던 저력이 바로 지금까지의 행보에 만족하기보다는 앞으로의 한 걸음을 준비하는 그 자세였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껏 <개그콘서트>의 위기설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매번 그 때마다 새로운 기수들이 등장해 새 바람을 일으키곤 했다. 선배들이 앞에서 잘 나갈 때, 그 뒤를 묵묵히 받쳐주면서 다음을 준비해온 후배들이 있었기 때문에, 또 그 후배들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선배들이 있기 때문에 <개그콘서트>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최근 박성호, 김대희, 김준호의 이른바 원로회의(?)에서 멘토-멘티제를 제작진에게 건의한 사실은, <개그콘서트>가 위기 상황을 맞았을 때 얼마나 개그맨들이 스스로 위기를 넘기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사실 새로운 코너를 짜도 새롭게 느껴지지 않고 어딘지 비슷비슷하다고 여겨지는 건 결국 그걸 만드는 개그맨들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늘 친한 개그맨들끼리 만들다보니 어떤 정체의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작위로 선배와 후배를 뽑아 한 조를 만들어 코너를 짜는 방식은 개그맨들에게는 조금 힘든 길이지만 그렇게 나온 개그는 새로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최근 호평 받고 있는 ‘황해’는 그 대표적 사례다.

 

결국 <개그콘서트>의 힘은 개그 소재나 아이디어 그 자체보다 개그맨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개그맨들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는 시스템의 끊임없는 보완은 <개그콘서트>가 진화할 수 있었던 저력이었던 셈이다. 이번 700회 특집에 특별출연하는 개그맨들의 면면을 보면 그 진화가 꽤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나면서 당대의 스타 개그맨들을 꾸준히 발굴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수다맨 강성범, 미친 존재감 정형돈, ‘생활사투리’에서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기억되는 이재훈, ‘우격다짐’으로 1인 개그를 선보였던 이정수, 설명이 필요 없는 <1박2일>의 이수근과 <정글의 법칙>의 김병만, <진짜 사나이>로 최근 대세가 된 샘 해밍턴 등등, 하지만 이번 700회 특집에 출연하는 반가운 얼굴들이 말해주는 건 이것이 단지 <개그콘서트>만의 성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네 전체 예능의 수혜로 이어져왔다.

 

<개그콘서트> 밖으로 나온 이들 개그맨들은 KBS의 다른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MBC, SBS에서도 맹활약하며 예능의 지평을 넓혀왔다. 개그맨이라는 젊은 피가 우리네 예능에 끊임없이 <개그콘서트>라는 아카데미(?)를 통해 수혈되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 같은 예능의 풍성함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KBS 희극인실에 들어가면 한 쪽 벽에 빽빽하게 기수별로 붙여진 개그맨들의 프로필을 볼 수 있다. 그 중 어느 기수는 다른 기수에 비해 많은 스타 개그맨들을 발굴했고, 또 어떤 기수는 그렇지 못한 결과를 내기도 했다. 후배 개그맨들이 잘 나갈 때 여전히 주목을 받지 못한 선배 개그맨들도 있다. 누구는 좀 더 사랑받았고 누구는 조금 덜 사랑받았다. 하지만 그 경중을 떠나서 거기 프로필로 붙여진 모든 개그맨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700회가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700회 특집보다도 701회를 준비하는 마음. 개그맨들 스스로 좋은 개그를 만들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마음. 자신은 조금 덜 사랑받아도 코너를 위해 기꺼이 도우미를 자처하는 자세. 그것이 지금의 <개그콘서트>를 만들었고 그 <개그콘서트>가 있어서 지금의 풍성한 예능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니 그 모든 개그맨들에게는 이번 700회를 즐길 충분한 자격이 있다. 늘 그러했듯이 한 회 한 회를 지금껏 해온 것처럼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다 보면 위기설이 다시 상승세로 바뀔 날이 올 것이고 800회, 900회, 천 회를 기록할 날도 올 것이다. 개그맨들의 그 절실한 노력이 있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