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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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 마초이즘 버린 형사물의 딜레마

D.H.Jung 2007. 5. 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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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에 보이는 여성성 경향

MBC 드라마 ‘히트’가 그려내는 강력계의 풍경은 욕설이 난무하고 폭력이 행사되던 여타의 우리네 형사물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먼저 강력계 팀장이 차수경(고현정)이란 여성이란 점이 다르다. 김영현 작가가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는 히트 팀에 여성을 내세운 것은 이 드라마가 전작인 ‘대장금’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걸 말해준다.

김영현 작가는 여성들의 성장 드라마 혹은 사회적 성공에 대한 환타지를 제대로 포착해내는 작가이다. ‘대장금’의 장금이가 조선시대 수라간 이야기를 통해 현대적 여성상의 전형을 에둘러 보여주었듯이, ‘히트’의 차수경 역시 남성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강력계 이야기 속에 보란 듯이 팀장 자리를 꿰차고 앉는다.

강력계 팀장을 여성으로 세우는 순간부터, 이 드라마는 지금까지 형사물들이 다루었던 범죄와 수사라는 재미에, 직장(?)여성의 성공담 혹은 성장담이라는 새로운 재미가 덧붙여지게 된다. 그 두 재미 중 무게중심이 기우는 것은 당연히 후자이다. 이유는? 전자는 이미 다른 드라마, 영화에서 수없이 다루어진 닳고닳은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즉 히트라는 지리멸렬해 보이는 팀을 이끄는 차수경이란 여성 리더십이 진짜 볼거리란 이야기다.

다른 형사물과 다른 차수경의 리더십
차수경의 리더십을 보면 확실히 다른 형사물과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녀는 지시를 내릴 때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를 유지한다. 장형사(최일화)가 가출한 딸을 찾아 근무지를 이탈해 홍콩으로 갔을 때도 질책하기보다는 그를 도우려고 애쓴다. 물론 극화된 것이지만 그녀는 심지어 홍콩까지 그를 찾아간다. 심종금(김정태)이 비리를 저지르고 다녀도, 김일주(정동진)가 같은 팀원 뒤를 캐고 다녀도 그녀는 인상을 쓰면서 한숨을 푹 내쉴 뿐, 주먹질을 한다거나 욕을 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대신 팀원들을 가족같이 끌어안는다. 그 모습은 마치 속을 지글지글 끓이면서도 챙길 건 다 챙겨주는 우리네 어머니들을 닮았다. 모성으로 느껴지는 이 리더십을 보면서 팀원들은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명령이 아닌 대화를 이끌어내는 리더십은 요즘 회사 내에서 불고 있는 ‘펀(fun) 경영’이나 ‘위미니지먼트(womanagement, 매니지먼트 개념에 우먼이 합쳐져 만들어진 신조어)’를 연상시킨다. ‘히트’팀의 다른 풍경은 상명하복, 위계질서 등 과거의 남성성으로 대변되던 기업문화가 지금 상호존중과 조화 등 여성성을 내포한 문화로 변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포착해낸 결과로 보여진다.

김재윤은 왜 애교만점 캐릭터가 되었나
그런데 그것이 단지 차수경이란 여성 강력계 팀장 때문 만일까. 이 드라마에서 드러나는 여성성은 그녀에서 머물지 않는다. 차수경과 멜로 라인을 만들어가는 김재윤(하정우)이란 캐릭터를 보면 그것은 단박에 드러난다. 그 역시 검사라는 설정이 있지만 과거의 명령체계와는 전혀 다른 리더십을 구사한다. 그의 리더십은 지켜봐 주고 도와주는 것이지 억지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멜로 라인에서 보여주는 남녀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김재윤은 고압적인 인물이 아니다. 스스로 무너져 애교를 부리면서 상대방을 웃게 만드는 캐릭터다. 그가 여성 시청자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것은 외모도 아니고 카리스마도 아니다. 그것은 배려하고 도와주는 그 캐릭터 속에 숨겨져 있는 여성성 때문이다. 그가 차수경에게 자꾸 잊고 있던 서랍장 속의 하이힐을 끄집어내 신겨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그녀가 잃어가는 여성성을 되살려주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남성식은 어떻게 미키성식이 됐을까
이런 캐릭터의 여성성 경향은 다른 팀원들에게서도 드러난다. 가장 남성적으로 보이는 남성식(마동석, 이름조차 남성식이다)은 겉으로 보기엔 남성성의 화신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를 살펴보면 그렇게 여성적일 수가 없다. 무기 같은 근육질에 우락부락한 얼굴로 배신한 차수경에게 전화를 해 소리를 질러대지만 그 눈에 눈물이 흐르는 면모를 보여준다. 우람한 근육질의 사내가 수줍게 자그마한 꽃 한 송이를 들고 있는 듯한 분위기 탓일까. 유독 남성식은 미키성식이라 불리며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히트’는 팀원들 간의 관계 역시 명령과 복종이 아닌 대화하고 고민하는 어찌 보면 가족 같은 수평적 관계를 그려낸다. 장형사(최일화)는 직급은 가장 낮지만 팀내에서는 맞형으로 대우를 받는다. 반대로 김일주(정동진)는 팀내에서 직급이 가장 높지만 막내 취급을 받는다. ‘히트’팀의 이런 관계는 거의 대부분의 권한을 위임받은 팀장이지만 팀원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직급 호칭을 파괴해버린 어느 회사를 연상케 한다.

‘히트’의 의미 있는, 위험한(?) 시도
‘히트’에서 드러나는 여성성 경향은 작금의 변화하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미국 파이낸셜 타임즈의 칼럼니스트 리처드 톰킨스는 “기업 경영자들이 마르스(화성)형에서 비너스(금성)형으로 바뀌고 있다”는 말로 변화되는 조직을 표현했는데, 여기서 마르스는 전생의 신인 반면, 비너스는 미의 여신이다. 즉 정보화, 감성 마케팅 같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여성성을 극대화한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이다.

남성들조차 남성성으로 요구되는 마초이즘의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하는 시대. 그런데 이렇게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는 ‘히트’는 왜 히트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전술했듯이 이 드라마가 갖는 두 가지 재미, 즉 범죄와 수사라는 남성성으로 대변되는 재미와 직장여성의 성공담이라는 여성성으로 대변되는 재미 사이에 균형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본격 수사물과 멜로 드라마, 아르레날린과 감성, 남성성과 여성성을 조화시키려던 ‘히트’의 의도는 매우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그만큼 위험성을 내포한 것이기도 하다. 여성성이 너무 강조되면 현실의 리얼함이 취약해지기 마련이고 남성성이 너무 강해지면 과거 여타의 형사물과의 차별점을 잃게 된다. 이것이 마초이즘을 버린 형사물, ‘히트’가 지금 처한 딜레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