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예체능'의 존재이유 알려준 김기택과 유남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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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체능'의 존재이유 알려준 김기택과 유남규

D.H.Jung 2013. 10. 3.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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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패가 아닌 스포츠의 즐거움 알려준 <예체능>

 

“지는 건 당연한데 어떻게 지느냐가 문제였다.” <우리동네 예체능>이 88 서울올림픽 특집으로 마련한 김기택과 유남규의 재대결에서 손에 땀을 쥐는 경기를 펼친 뒤 패배한 김기택은 이렇게 말했다. 88 서울올림픽 당시의 데자뷰를 느끼게 할 정도로 25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명승부를 펼친 그들이었다.

 

'우리동네 예체능(사진출처:KBS)'

현 탁구 국가대표 감독인 유남규와 현역에서 멀어진 김기택의 경기는 어쩌면 결과가 뻔한 경기일 수 있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는 그저 그런 경기에 머무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가자 두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해졌다. 유남규는 허벅지에 통증을 느낄 정도로 열심히 경기에 임했고 김기택은 명불허전의 과감한 드라이브를 선보이기도 했다.

 

88 서울올림픽 당시 김기택과 유남규가 금메달을 놓고 벌인 대결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공개되었다. 김기택이 탁구채의 손상된 러버에 집착하느라 경기에서 지게 됐다는 이야기와, 경기가 끝나고 유남규가 김기택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자 김기택이 “잘했다. 수고했다”고 격려해줬다는 이야기는 명승부만큼 훈훈한 두 사람의 관계를 말해주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고 벌이는 대결과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벌이는 한 판 승부는 같을 수 없다. 하지만 거의 똑같은 명승부를 펼쳐 보이면서도 올림픽과는 다른 스포츠의 묘미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 대결은 <우리동네 예체능>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스포츠를 소재로 하지만 스포츠 프로그램과는 다른 <우리동네 예체능>만의 차별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배드민턴 경기는 몇 개월 연습한 걸로 몇 년씩 연습한 동호회와 경기를 펼쳐 이긴다는 것이 실로 어렵다는 걸 보여주었다. 어찌 보면 뻔히 질 경기라는 것. 하지만 김기택이 말하고 실제로 보인 것처럼 ‘지더라도 어떻게 지느냐’가 <우리동네 예체능>이 역시 나가야할 방향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또한 엘리트체육과는 다른 생활체육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이기기 위해서 스포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한다는 것.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이기려고 노력해야겠지만 못 이긴다고 해도 생활체육의 목표는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스포츠를 늘 누가 이기고 지느냐에만 몰두해서 바라봤던 우리의 시각은 <우리동네 예체능>이 보여준 일련의 경기들을 통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 본 경기만큼 준비하고 연습하는 과정 역시 스포츠로서는 충분하다는 것.

 

따라서 김기택과 유남규 같은 한때 최고의 스포츠 스타들이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보여준 모습은 자못 상징적이다. 어찌 보면 엘리트 체육의 제일 꼭대기에 있던 그들도 이처럼 생활체육의 장으로 나오면 유쾌해지고 훈훈해질 수 있다는 것. 져도 어떻게 지느냐에 따라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는 것을 <우리동네 예체능>은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동네 예체능>과 우리네 스포츠가 이 앞으로 나가야할 길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