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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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나

D.H.Jung 2013. 10. 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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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 싸움과 노출경쟁에 가려진 영화제

 

영화제로 부산이 들썩들썩하는 건 알겠는데 정작 어떤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지, 어떤 행사가 어떤 의미로 치러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부산이라는 특정한 지역에서 하는 국제영화제이기 때문에 부산까지 가지 못하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인터넷이나 신문 혹은 방송에 잠깐씩 나오는 기사들이 영화제에 대한 정보의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인터넷에 들어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쳐보라. 거기에 정작 영화에 대한 정보들이 얼마나 있는지.

 

사진출처:YTN

제일 많은 것은 역시 레드카펫의 여배우 노출 경쟁을 말 그대로 경쟁하듯 올린 사진들이다. 매회 그러하듯이 이번에는 등을 훤히 드러내다 못해 엉덩이골까지 드러낸 의상을 입고 레드카펫에 올라온 강한나와 가슴을 거의 드러내다시피 한 드레스를 입은 한수아가 주역이 될 모양이다. 여기 저기 연관검색어로 떠 있고 모음 사진에 동영상 서비스는 기본이다.

 

어딜 가나 논란과 화제를 동시에 일으키는 클라라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단연 기사의 상당 부분을 채우는 인물이다. 하지만 클라라가 무슨 영화에 출연하는지 알 수 없고, 이것은 강한나나 한수아도 마찬가지다. 물론 한수아는 올해 <연애의 기술>이라는 영화가 개봉예정중이라고 하지만 이것도 레드카펫 노출을 통해 얻어진 홍보일 것이다. 영화 홍보하겠다는 데야 무에 잘못된 것이 있겠냐마는 막무가내 노출로 정작 영화제의 영화와 연기자에 대한 시선을 빼앗는 건 민폐가 아닐까 싶다.

 

아이돌들이 연기자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영화제에 의도치 않은 폐를 끼치는 상황도 발생했다. 부산 해운대구 중동 비프 빌리지 야외무대에서 국외의 유명인사들을 초대해 열렸던 행사에서는 몇몇 아이돌 연기자들이 빠져나가면서 관객들까지 뭉텅 빠져나가 남은 해외 스타들에게는 민망한 행사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지나친 팬덤의 문제일 수 있지만 이런 상황을 사전에 예방할 수는 없었을까. 이를테면 행사가 끝날 때까지 아이돌 연기자들이 함께 하는 배려를 보였다면 어땠을까.

 

이러니 행사에 참여했던 배우들 중 일부는 화를 낼 법도 하다. 정작 주인공이 되어야 할 18년이라는 영화제의 역사를 만들어온 영화인들과 영화들이 저 뒤로 묻혀 버리고 대신 일부 아이돌들이나 레드카펫 노출 연예인들 이야기만 무성하게 쏟아져 나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현수와 이켠이 SNS상에 토로한 씁쓸하고 답답한 심경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게다. 영화제 행사가 연예인들의 홍보 수단이 되거나 팬 미팅 현장이 되어서야 될 말인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제 소식보다 더 뜨거웠던 이슈는 강동원측과 남동철 프로그래머 사이에 벌어진 진흙탕 싸움이다. “레드카펫에 서지 않으려면 센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그 진위와 상관없이 자극적이다. 마치 영화제 측에서 갑질을 한 뉘앙스를 보이기 때문이다.

 

남동철 프로그래머는 여기에 맞서 기자회견을 열었고 “강동원측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맞불을 놓았다.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잡음이 터지면서 영화제의 이야기는 저 뒤로 훌쩍 물러나 버렸다. 누가 잘못했든 쌍방이 미꾸라지 역할을 한 건 사실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진흙탕 속에 영화제는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18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명실공히 아시아의 대표적인 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영화인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던가.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판이 제대로 영화인들의 축제가 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영화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들은 점점 사라지고 화제와 이슈만 난무하고 있는 듯한 영화제 풍경은 그래서 멀리서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씁쓸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물론 선정적으로 화제만을 좇는 언론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영화제측이 좀 더 세심한 준비와 배려를 했다면 이처럼 논란과 가십성으로만 흐르는 영화제가 되지는 않았을 게다. 매체를 통해 들어오는 부산국제영화제 이야기에 왜 영화 얘기를 찾는 건 이리도 어려운 걸까. 이것은 이제 역사와 전통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