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나는 암살당할 것이다', 2013 EIDF 다큐의 진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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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암살당할 것이다', 2013 EIDF 다큐의 진수

D.H.Jung 2013. 10. 1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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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의 존재의미를 보여준 '나는 암살당할 것이다'

 

2013 EBS 국제 다큐영화제(EIDF)는 올해로 10회를 맞는 명실공히 다큐 최대의 축제. 그간 다큐가 가진 다양한 매력들을 매회 보여줌으로써 다큐의 재미는 물론이고 그 의미까지 확장시킨 것에 지대한 공헌을 한 영화제라 여겨진다. 특히 영화관 관람과 TV 시청이 모두 가능한 다큐영화제라는 점에서 TV다큐와 영화관 다큐 사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없애준 점은 다큐의 대중화를 위해 상당히 중요한 진일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교육방송으로서의 EBS가 다큐멘터리에 이처럼 깊은 애정과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향후 다큐가 가진 교육적인 효과를 에둘러 가늠하게 해준다.

 

 

'사진출처:나는 암살당할 것이다'

이번 EIDF 페스티벌 초이스에 선정된 11개 작품 중 하나인 저스틴 웹스터가 만든 <나는 암살당할 것이다>라는 작품은 이 영화제가 추구하고 있는 다큐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다큐는 과테말라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살인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 속에 살해된 당사자가 스스로 자신이 암살당할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 어느 날, 과테말라에서 로드리고 로젠버그라는 변호사가 이른 아침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살해당한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얼마 뒤, 그가 생전에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내용의 동영상이 발견되고 유튜브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간다. 충격적인 것은 동영상 속의 로드리고가 살해 용의자로 당시 정적이었던 대통령을 지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과테말라 전체는 혼란에 휩싸이게 되고 그의 죽음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면서 감춰져 있던 내막이 조금씩 드러난다.

 

자신이 살해될 것을 알면서도 꿋꿋이 그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로드리고의 용기는 어찌 보면 과테말라라는 폭력이 난무하는 나라에 저항한 한 영웅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다큐멘터리는 이 로드리고가 얼마나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사람인가를 주변 가족들과 동료들을 통해 증언해준다. 하지만 이야기는 단지 거기서 머무는 것은 아니다. 후반부에 가면 그의 인간적인 면모들이 등장하면서 이 사건이 국가의 폭력과 마주한 개인의 저항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복수심에 의해 생겨난 무모한 선택인지가 논쟁적인 문제로 제기된다.

 

 

'사진출처:나는 암살당할 것이다'

물론 그 선택에 대해서 다큐멘터리는 어떤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로드리고의 증언과 그 주변정황들을 촘촘히 보고난 후 우리들 각자가 생각해야 할 몫이다. 즉 이 다큐멘터리는 과테말라의 폭력과 정부의 부패에 대한 문제를 한 개인을 통해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한 사람의 드라마틱한 삶과 사랑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자못 도발적인 소재의 다큐멘터리는 일방적인 주장에 머무르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네 사회와 우리의 삶에 대한 성찰로 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암살당할 것이다>가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영상이 가진 힘이다. 즉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실제 살해된 로드리고의 증언은 다큐가 가진 핵심적인 힘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죽은 자의 증언이나 기록은 살아남은 자들에 어떤 의미를 남기는가. 사실 이것은 기록물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다큐멘터리가 가진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암살당할 것이다>라는 영화는 다큐에 대한 다큐라고도 볼 수 있겠다.

 

실로 모든 것들이 영상으로 기록되는 시대가 아닐 수 없다. 또 그 기록자들은 이제 특정 전문가들이 아니고 이제 누구나 스마트폰 하나씩을 들고 있는 우리 모두가 되고 있다. <나는 암살당할 것이다>의 많은 자료들이 CCTV나 음성파일 등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온 영상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다큐의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걸 에둘러 말해준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로드리고처럼 기록을 남기고 싶어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절실한 그 의지가 있다면 누구나 자신의 메시지를 통해 사회에 논점을 던질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다큐의 진수가 아닐까.

 

 

'사진출처:나는 암살당할 것이다'

10월 18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제 10회 국제다큐영화제는 고려대학교 KU시네마트랩, 건국대학교 KU 시네마테크, 인디 스페이스, EBS SPACE 등에서 관람할 수 있고 부대행사로 비틀즈의 비서이자 비틀즈 팬클럽의 관리자였던 프레다 켈리와 <Good Ol’ Freda>의 프로듀서인 제시카 로우슨이 참석한 자리에 그녀의 다큐 <Good Ol’ Freda>를 특별상영하는 <비틀스 데이(10월24일 목 오후 4시반)>가 있을 예정이다. 행사에는 우리나라의 비틀즈 트리뷰트 밴드인 멘틀즈와 타틀즈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또한 다큐 영화들은 EBS를 통해서도 방영될 예정이다. <나는 암살당할 것이다>는 10월20일(일) 밤 10시45분에 방영된다. 다큐의 진수를 느끼고 싶은 분께 강추하는 바이다.

 

* 이 다큐멘터리의 감독인 저스틴 웹스터는 유럽의 영화제작자이다. 현재는 바르셀로나에 거주하며 남미에서 광범위하게 일하 고 있다. 그는 십년 넘게 국제 관객들을 대상으로 장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왔고 상을 받는 등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EIDF 웹사이트(www.eidf.org)에서 총 10개 작품을 자유 관람할 수 있는 <페스티벌 패스>를 1만원에 구입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