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IDF <전선으로 가는 길>, 왜 그는 최전선으로 갔을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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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전선으로 가는 길>, 왜 그는 최전선으로 갔을까

D.H.Jung 2013. 10. 2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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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 인간

 

"팀은 대단히 놀라운 일을 해내는 능력이 있었죠. 그는 사진작가, 비디오작가, 저널리스트, 인도주의자, 참여자로서의 경계가 없는 그냥 팀이었어요. 그건..." 여기까지 말한 저널리스트 제임스 브라바존은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 듯 가만히 있더니 눈물을 훔쳐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무척 찾기 힘든 자질이죠."

 

 

'전선으로 가는 길(사진출처:EIDF)'

왜 제임스는 팀을 회고하면서 눈물을 흘렸을까. 팀 헤더링턴. 이 다큐멘터리의 감독이기도 한 세바스찬 융거와 함께 2008년 아프가니스탄 미군 기지를 촬영한 영화 <레스트레포>로 아카데미 다큐 부문 후보에 올랐던 인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최전선으로 들어가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 속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인물. 그러다 폭발 사고로 사망한 인물.

 

제임스가 말한대로 그가 단지 저널리스트에 사진작가 비디오작가 인도주의자였다면 그가 남은 자들에게 전하는 진심이 이토록 크지는 못했을 게다. 그는 전쟁을 찍으려 전장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인간을 찍기 위해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많은 사진가들이 처참한 전쟁의 장면들을 찍을 때 그는 그 속에서도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사진을 통해 확인시켰다.

 

라이베리아 내전에 제임스와 함께 처음 최전선으로 들어간 팀이 확인한 것은 전쟁이 정의나 국가 간의 분쟁과는 상관없는 어떤 것이란 점이었다. 무수한 잔학행위가 벌어졌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일선 병사들과 지휘 계층 사이의 권력관계"라는 걸 팀은 꿰뚫어보았다. "전쟁은 젊은이들을 세뇌시키는 일환이고 결국 그들은 출신과 능력에 따라 정치 과정의 도구로 이용된다." 팀의 눈에는 그들의 고통이 먼저 보였던 것.

 

<레스트레포>를 찍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민군기지에서 함께 생활하며 그가 깨달은 것은 전쟁이 주는 끔찍함보다 더 큰 것이 피를 나눈 형제로 묶여지는 강렬한 유대감이었다. 즉 전쟁이 강렬한 것은 그 갈등이 만들어내는 파괴적인 속성보다 그 파괴적인 환경 속에서 온전히 하나로 똘똘 뭉쳐지는 그 놀라운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 파괴의 현장에서 오히려 '교감'을 보았던 것. 참전용사였던 제임스의 할아버지는 "전쟁은 인류가 서로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유일한 기회"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최전선으로 간 팀이 통찰한 전쟁의 본질은 실로 놀랍다. "뉴스로 중계되는 이 세상에서 전쟁기계는 단순히 기술이나 폭탄, 미사일, 시스템이 아닙니다. 진정한 전쟁기계는 남자들을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 하나의 단체로 결속시키고 서로를 죽이게 만드는 것이죠. 결국 이렇게 산 중턱에 모여든 이 젊은이들은 살아 돌아가기 위해 서로를 보살피게 됩니다. 그게 다죠. 전쟁이나 정치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팀이 이렇게 총알이 날아다니는 최전선으로 들어가는 용기를 내고 또 깊은 통찰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남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속으로 들어가 동화됨으로써 그들의 실제 감정과 고통과 즐거움을 들여다봤다. 그 몰입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최전선에서도 거기서 싸우는 젊은이들과 똑같이 살아낼 수 있었던 것. 이것은 이 다큐가 전하는 또 다른 메시지이기도 하다. 삶이 그렇지 않은가. 살벌한 세상에서 우리를 살게 해주는 것은 그 진정한 몰입과 소통과 공감이 아니던가.

 

팀을 보내고 남게 된 세바스찬 융거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드디어 전쟁의 본질에 자신이 도달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을 누구와 싸우고 누구를 죽인다는 그런 갈등이 아니고 결국에는 형제를 잃게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형제를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쓰는 것. <전선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그래서 전쟁이 아니라 인간이다.

 

"전쟁의 진정한 현실은 내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아니라 전쟁의 본질적 진실은 형제를 잃게된다는 확실성이라고 했어요. 이제 나도 형제를 잃었으니 모든 걸 깨달았을 거라더군요. 이건 냉담한 말이 아니에요. 진실은 냉담할 수 없죠. 진실이니까요. 마침내 알게됐습니다." - 세바스찬 융거

 

실로 이 다큐멘터리는 팀 헤더링턴이라는 인물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뭉클해지는 영화다. 그의 확신에 찬 입과 무언가를 꿰뚫어보는 듯한 두 눈 약간 흥분된 듯한 코는 그가 하는 수많은 말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다큐가 가진 기록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팀의 얼굴만으로도 충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