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고맙습니다’가 우리에게 남긴 세 가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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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가 우리에게 남긴 세 가지

D.H.Jung 2007. 5. 11.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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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 없고 악역 없는 고마운 드라마, ‘고맙습니다’

MBC 수목 드라마, ‘고맙습니다’가 종영했다. 이 드라마는 흔히 종영과 함께 ‘중독’이니 ‘금단현상’이니 하는 증상으로 아쉬움이 표현되는 강한 인상을 남긴 드라마들 속에 자리매김하게 될 것 같다. 시청률 전쟁에 자꾸만 자극적으로 변해 가는 드라마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본래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었으나 잊고 있었던 ‘감동’을 끄집어내 준 고마운 드라마, ‘고맙습니다’. 그 아름다웠던 시간의 흔적이 남긴 여운의 의미를 되짚어보자.

자극이 아니어도 좋다
자극과 파행을 거듭하는 이른바 논란드라마들의 탄생목적은 명백히 시청률이다. 그것은 이미 공식이 되어버렸다. 쏟아져 나오는 드라마들 속에서 일단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고 그러기 위해 이들 드라마들은 자극적인 장면과 파행적인 인물들을 전면에 배치한다. 논란은 예상된 코스이며 시청자들은 그 논란을 만든 극중 캐릭터들이 야기한 마음의 상처를 분노하면서 보게된다. 시청자들에게 욕을 먹지만 시청률은 오른다. 목적의 달성이다.

하지만 ‘고맙습니다’는 이들 논란드라마가 가는 공식을 정반대로 걷는다. 시선을 잡아끌기 위한 자극과 파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착한 캐릭터들, 착한 스토리로 일관해 나간다. 사실 치매든 에이즈든 미혼모든 그 어느 한 가지만 가지고도 논란드라마의 공식을 채우는 건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설정들을 가지고 이 드라마는 교과서에 나올 법한 정답들만 하나씩 끄집어낸다.

자극적일수록 시선을 끄는 세태에, 그 시시해 보이는 정답에서 그 누가 드라마 성공의 공식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논란드라마들이 내는 자극적인 상처에 피학적 쾌감을 느끼며 드라마를 봐오던 시청자들에게, 이 정답들은 치유의 즐거움을 일깨워주었다. 드라마를 보며 억지로 짜낸 눈물이 아닌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마다 우리의 마음 속에 난 상처들은 하나씩 아물게 되었다. 시청자들은 감동하고 시청률은 오른다. 꼭 자극이 아니어도 드라마는 된다는 반가운 소식. ‘고맙습니다’는 그 소식을 들고 온 고마운 드라마다.

좋은 드라마는 악역이 없다
또한 ‘고맙습니다’는 좋은 드라마는 악역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해낸 드라마다. 작년 좋은 드라마의 대명사가 되었던 ‘연애시대’에서 우리가 주목했던 것은 악역 없이도 충분히 극적인 드라마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연애시대’는 드라마의 극적 상황이 선악구도와 같은 대립이 아닌, 성격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로도 충분하다는 걸 실증해 보여 주었다.

악역이 없는 극적인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캐릭터에 대한 진정성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선악구도에서 보여지는 선한 캐릭터와 악한 캐릭터는 그것을 인물로 두고 볼 때 반쪽 짜리의 진실만을 담은 캐릭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악한 캐릭터 속에서 선한 면모를 찾아내고, 선한 캐릭터 속에서 또한 악한 면모를 찾아낸다면 우리는 그것을 ‘완전하지 못한 인간’으로 받아들이고, 그 때부터 드라마에서 악역은 사라지게 된다.

‘고맙습니다’는 다만 악역이 없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물들 속에 공존하는 불완전함을 감동의 요소로 끄집어낸다. 그것은 악한 면모를 보이던 석현모(강부자)가 흘리는 회한의 눈물 속에서, 편견으로 똘똘 뭉쳐있던 푸른도 주민들의 눈물 속에서, 좀체 사람에 대해 마음을 열지 못했던 민기서(장 혁)의 변화과정 등을 통해 보여진다. 재미있는 것은 이 드라마에서 악역이 없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영신(공효진)의 가족들이 늘 입에 달고 사는 “고맙습니다”라는 마법의 주문 때문이라는 것. 그 주문이 악역이 될 뻔했던 인물들 입에서 흘러나올 때, 악역은 사라지고, 좋은 드라마는 탄생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 아니다
무엇보다 ‘고맙습니다’라는 드라마가 우리에게 주고 간 가장 큰 선물은, 어찌 보면 그저 심심풀이나 재미로 치부될 수 있는 드라마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드라마를 보며 혹여나 영신이나 봄이(서신애), 미스터리(신구)가 죽지 않을까 마음 졸이게 된 것은 그 드라마 속 캐릭터들이 시청자들의 마음 속에 살아있는 인물로 각인되었다는 반증이다. 우리는 영신이 미혼모로서 당하는 고통과 봄이가 에이즈에 걸려 받는 편견, 그리고 기억을 잃어버린 미스터리의 상황을 어느 순간부터 내 일처럼 느끼게 되었다.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들의 몰입을 의도하는 건 어떤 드라마나 마찬가지일 수 있지만 이 드라마는 거기에 독특한 화법을 개입시킨다. 그것은 전혀 고맙지 않은 상황에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캐릭터에 몰입한 시청자는, 분명 캐릭터가 분노해야할 상황에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순간적으로 몰입이 깨지는 체험을 갖게 된다. 캐릭터와 시청자간의 감정에 간극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간극이 주는 짧은 이질감은 곧 캐릭터에 대한 감동으로(어쩌면 저럴 수가 있나 하는 경외감) 이어짐으로써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생각은 드라마를 그저 재미거리로만 취급하는데서 나온 것이다. 물론 드라마는 분명 재미거리임이 맞지만, 그것으로만 취급될 때 괴물처럼 얼굴을 내미는 것이 시청률 지상주의와 논란드라마라는 것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드라마가 드라마일 뿐이 아니라고 여길 때 거기서 적어도 우리는 괜찮은 드라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특별한 체험의 시간을 준 ‘고맙습니다’는 종영에 있어서도 ‘중독’이니 ‘금단현상’이니 하는 것을 뛰어넘어 ‘긴 여운’으로 오래도록 미소지을 수 있는 좋은 드라마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