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따뜻한 말 한마디', 사실 불륜은 중요한 것도 아닌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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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말 한마디', 사실 불륜은 중요한 것도 아닌데

D.H.Jung 2013. 12. 1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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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말 한마디>, 왜 제목을 이렇게 잡은 걸까

 

<따뜻한 말 한마디>라니. 이 드라마 일단 제목이 수상하다. 그래서 드라마를 들여다보면 뭐 딱히 새롭다기보다는 그저 불륜을 다루는 드라마 정도로 처음에는 다가온다. 실제로 극 중에서 유재학(지진희)과 나은진(한혜진)은 불륜관계이고 그 사실은 물론이고 그 상대방이 나은진이라는 것도 유재학의 아내 송미경(김지수)은 알고 있다. 그녀는 짐짓 모르는 척 넘어가려 하지만 곧 도무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폭발하고 만다.

 

'따뜻한 말 한마디(사진출처:SBS)'

불륜은 어쨌든 가장 강한 소재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를 오인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불륜은 사실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단박에 드러난다. 그것은 나은진의 남편 김성수(이상우)라는 인물을 통해서다. 그는 과거 불륜을 저질렀었고 그걸로 아내와 갈등을 빚었지만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 어딘지 퉁명스러운 인물이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경험을 한 후 그는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온다.

 

아내에게 연애시절의 기분을 새삼 느끼게 하려 안 하던 짓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불륜 사실이 처제에 의해 갑자기 들춰져 장모에게까지 알려지자 그는 처가댁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사죄도 하고 전복을 사갖고 가 기분을 풀어주려고도 노력한다. 퉁명스러웠던 인물이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인물로 돌아왔을 때 복잡한 감정의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어진다.

 

반면 유재학과 송미경 사이에는 이러한 따뜻한 말 한마디가 없다. 유재학이 번번이 고마워’, ‘미안해로 넘어갈 때마다 송미경은 사랑해라고 말해 달라 요구한다. 하지만 유재학의 입에서는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유재학의 불륜을 그저 넘기려 하다가도 넘길 수 없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이 따뜻한 말 한마디의 부재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따뜻한 대화 없이 엇갈리기만 하던 이 위기의 부부는 서로를 향해 폭발하고 만다.

 

보통의 드라마들이 이야기나 상황의 극적 전개에 더 많이 관심이 가 있다면 <따뜻한 말 한마디>는 그 극적 상황 속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에 집중하는 흔치 않은 시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이 나누는 대화에 집중해서 바라보면 이 드라마는 훨씬 더 흥미로워진다. 늘 속내를 숨기고 있는 송미경과, 그녀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듯 차가운 말만 골라 내뱉는 추여사(박정수), 명민한 딸 윤정(이채미)은 물론 주변사람들에게 늘 기분 좋은 말을 건네는 나은진, 하다못해 은행원으로 일하는 은진의 동생 은영(한그루)이 은행에서 말 한마디 때문에 겪는 작은 에피소드들까지 훨씬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결국 이 흔치 않은 제목의 드라마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그 해답은 나은진과 송미경이라는 캐릭터와 그들이 구사하는 말 표현 속에 들어가 있다. 나은진은 그다지 친하지 않은 쿠킹클래스의 언니인 송미경 앞에서 지금이 최악의 상황이라며 진정어린 눈물을 흘릴 줄 아는(속내를 표현할 줄 아는) 인물이다. 하지만 송미경은 정반대다. 그녀는 나은진이 남편의 내연녀라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겉과 속을 달리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의 기준으로 보면 극과 극의 캐릭터가 바로 그 점 때문에 앞으로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물론 대사가 굉장히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지금껏 그것은 어쩌면 표면적인 기능만을 다뤘는지도 모르겠다. 즉 수사적이고 표현적인 대사의 상찬은 넘쳐났지만 그것이 극에서, 아니 우리네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들여다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따뜻한 말 한마디>는 어찌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우리네 삶의 비의를 건드리고 있다고 보여진다. ‘말 한마디가 가진 삶의 변화라니. 실로 당찬 시도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