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400년, 14일, 3일, 달라진 SBS드라마 시간 활용법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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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14일, 3일, 달라진 SBS드라마 시간 활용법

D.H.Jung 2014. 3. 1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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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그대>부터 <쓰리데이즈>까지달라진 드라마 속 시간

 

<별에서 온 그대>40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주인공 도민준(김수현)은 조선시대에 별에서 와 현대까지의 시간을 살아낸다. <신의 선물-14>은 유괴되어 살해된 딸을 구하기 위해 14일 전으로 되돌아간 김수현(이보영)의 고군분투를 다룬다. <쓰리데이즈>는 휴가 중인 대통령이 세 발의 총성과 함께 실종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3일 씩 세 챕터로 나눠 총 9일간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신의 선물-14일(사진출처:SBS)'

400, 14, 3. 최근 SBS드라마들은 그 시간 활용법이 달라졌다. 400년으로 늘리기도 하고 14일 전으로 되돌리기도 하며 3일 간으로 압축시키기도 한다. 여타의 드라마들이 으레 그렇듯 순차적인 흐름의 시간 속에 간간히 플래시백을 넣는 단순한 방식과는 사뭇 다른 시간 활용법이다. 왜 이런 변화를 준 것일까.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시간의 흐름이 달라지면 자연스럽게 드라마의 공간도 달라진다. 400년의 시간을 다룬 <별에서 온 그대>는 조선시대의 풍경에서 현재의 빌딩 숲으로 변화하는 장면을 오프닝으로 집어넣었다. 긴 시간 동안 달라진 공간 위에서 도민준은 그 시간의 두께만큼의 공력(, 경험, 지적능력)을 쌓게 된다.

 

이 드라마가 특이했던 것은 400년을 뛰어넘은 시간대를 살아가는 주인공이 순간 시간을 멈추는 능력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시간의 멈춤은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순간이동(공간의 이동)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시간의 변화는 공간도 바꾸고 주인공 캐릭터도 바꾸며 결국은 이야기도 바꾸는 효과를 가져온다.

 

<신의 선물-14>에서 시간은 14일 전으로 되돌려진다. 타임리프 설정이지만 딸을 잃은 김수현이 절망 끝에 강물에 뛰어든 후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이건 그녀의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찰나의 환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딸이 유괴되어 살해되기 전 시간대로 돌아간다는 설정 하나는 이 여주인공에게 목숨을 걸고 해야 할 미션을 부과한다.

 

보통의 상황에서 평범한 주부가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현장에 뛰어든다는 것은 결코 쉽게 벌어지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14일 후에서 되돌아온 김수현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가능하다. 시간은 되돌렸지만 사건은 되돌리지 못했다. 따라서 14일을 되돌리는 설정 속에서 김수현은 마치 시간과 싸우는 듯한 긴박감 속에서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쓰리데이즈>는 제목 때문에 3일 간에 벌어진 일처럼 착각되지만 사실은 세 챕터로 꾸며진 각각 3일 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따라서 총 9일 간의 기록이 되는 셈. 그런데 왜 각 챕터를 굳이 3일이라는 시간으로 한정했을까. 그것은 군더더기 없이 압축된 시간 속에서 보다 집약적인 이야기를 펼쳐 보이기 위함이다. 그림으로 치자면 정밀묘사 같은 것.

 

첫 챕터에서의 3일은 그래서 청수대에서 벌어진 대통령 저격 사건을 다룬다. EMP폭탄이 터지고 모든 전자기기가 꺼져버리자 들려오는 세 발의 총성. 그리고 사라진 대통령. 이 미스테리 안에 담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것. 한태경(박유천)은 이 사건이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죽음을 목격한 서조분서 순경 윤보원(박하선)과 사건을 풀어나간다. <쓰리데이즈>의 각각의 3일은 그래서 선택적인 시공간을 보여준다. 2회의 3분의 2가 청수대라는 공간에서의 하룻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식이다.

 

흔히들 드라마의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가끔씩 회상이 들어가지만 그것은 전체적인 흐름과 그 이야기의 속도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SBS 드라마가 시도하는 시간의 재구성은 지금껏 봐왔던 통상적인 이야기 흐름을 바꾸어놓는다. 드라마가 새롭다고 여겨지는 건 그래서 이 시간을 다루는 방식의 변화를 통해서 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드라마를 보는 대중들의 시간도 바꾸어 놓는다. 그저 킬링타임용으로 틀어놓고 언제 들여다봐도 이해될 수 있는 느슨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번 쳐다보면 깊게 빠져드는 몰입감을 선사하는 이야기. 그래서 이들 드라마들을 보다보면 어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지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드라마 속 시간의 재구성은 대중들의 시간에 대한 달라진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시간은 물론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지만, 단지 그런 양적인 흐름이 아니라 질적인 흐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 찬란했던 청춘의 순간에 멈춰서기도 하고, 어느 결정적인 사건의 시간에 멈춰버리기도 한다. 또 앞으로 나갈 수 없어 뒤로 되돌리고픈 시간도 있다. 이 새로운 시간 경험을 대리해준다는 것. 이들 달라진 시간 활용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주는 또 다른 재미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