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밀회', 상류층의 욕망 그 밑바닥을 해부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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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상류층의 욕망 그 밑바닥을 해부하다

D.H.Jung 2014. 5. 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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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사랑 타령 따위의 드라마가 아니다

 

JTBC 월화드라마 <밀회>에 처음 등장했던 오혜원(김희애)의 모습과 지금 현재를 비교해보면 너무나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떻게든 상류층에 들어가려 안간힘을 썼다는 그녀. 그래서 그 언저리까지 올라가 으리으리한 집과 차와 커리어를 누리며 우아하게 살고 있다고 여겼던 것들이 후반부로 와서는 모두가 허상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밀회(사진출처:JTBC)'

그녀는 결국 그녀가 말했듯 우아한 노비에 불과했던 것. 재단이 위험에 처하자 도마뱀 꼬리처럼 잘려져 버리는 그런 존재가 그녀의 실상이었다. 번듯한 교수 남편에 마사지 샵을 들락거리며 상류층들의 삶을 코스프레하고 있지만 그것은 전부 연기에 불과했다. 사실 부부관계라고 할 수도 없는 그녀와 남편 강준형(박혁권)의 관계는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해 연기되는 말 그대로의 쇼윈도 부부였고, 그녀를 가족처럼 챙기는 것처럼 보였던 서한그룹 사람들은 그녀를 이용할 뿐이었다.

 

<밀회>가 다루려 했던 것은 결국 스무 살 차이 이선재(유아인)와 오혜원의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의 삶의 실상을 끄집어내기 위한 하나의 촉매제였을 뿐. 드라마는 우아하게 연기된 삶을 살아가던 오혜원이 그 삶이 거짓이며 심지어 추악한 욕망에 불과했다는 것을 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선재라는 순수한 존재가 오혜원의 숨겨져 있던 진짜를 꺼내주었던 것.

 

상류층의 삶이 가짜로 점철된 욕망 덩어리일 뿐이라는 건 이 드라마 초반에 이미 보여진 바 있다. 서필원 회장(김용건)의 후처인 한성숙(심혜진)과 그의 딸 서영우(김혜은)가 화장실에서 사로 머리채를 잡고 드잡이를 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재벌가의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가족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가족이라고 할 수 없는 관계. 그들의 관계는 어찌 보면 돈으로 겨우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필원 회장은 틈만 나면 다른 여자를 넘보고, 한성숙은 애정보다는 그의 재력에 달라붙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하며, 서영우는 결혼했지만 젊은 남자들만을 욕망하는 인물이다. 그런 상류층의 삶을 왜 오혜원은 그토록 갈망했던 것일까. 결국 우아해지고 싶은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끝단은 그들 상류층의 불행한 삶을 그대로 닮아가는 것일 뿐이다.

 

클래식 연주는 그래서 이 드라마가 다루는 가짜와 진짜의 이야기를 에둘러 말해준다. 흔히들 우아하게 차려 입고 공연장에 앉아 듣는 클래식 연주에는 물론 진짜 감상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도 있지만 또한 속물근성도 들어있다. 마치 그 음악을 들으면 자신도 상류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하는 것. 또한 강준형 같은 이들에게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제자는 음악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영달을 위한 이용가치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지도 교수가 없어 연습 자체를 하지 못하는 친구들의 5중주를 위해 피아노를 쳐주는 이선재의 모습은, 그래서 오로지 성공을 위한 준비와 연습을 시키는 강준형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진짜 연주란 결국 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이선재와 오혜원이 함께 피아노를 치며 교감했던 그것이었다.

 

쇼윈도 부부로 힘겹게 아내 역을 연기하던 오혜원은 잠시 자기 방에 들어왔다가 침대에 페이지가 열려진 채 엎어져 있는 리흐테르의 자서전을 본다. 이선재가 그리 해놓았던 것처럼 보이는 그 자서전을 읽으며 오혜원은 힘겹게 버티던 하루가 무너져 내린다.

 

우리는 차를 타고 떠난다. 피아노를 실은 차가 뒤따른다. 전염병을 피하듯 고속도로를 피해서 달린다. 어느 작은 도시 귀퉁이에서 연주를 한다. 극장이 될 수도 있고 학교가 될 수도 있다. 정말 좋은 점은 사람들이 속물근성 때문이 아니라 오직 연주를 들으러 온다는 것이다.’

 

리흐테르의 자서전에 밑줄이 그어진 이 글은 예술이 비웃는 속물근성과 이 드라마가 말하는 우아해 보이는 상류층의 가짜 삶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들어있다. 결국 <밀회>는 한갓 스무 살 차이의 남녀가 벌이는 사랑과 불륜 따위의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상류층으로 대변되는 끝없는 욕망의 더러운 실체를 낱낱이 해부하고 있다. 심지어 클래식 연주 속에서조차 존재하는 속물근성의 이야기를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