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법정드라마, 변호사보다 변호인을 꿈꾸는 까닭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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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드라마, 변호사보다 변호인을 꿈꾸는 까닭

D.H.Jung 2014. 5. 2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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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밀회>가 그리는 법 정의의 문제

 

최근 종영한 JTBC <밀회>에는 김인겸(장현성)이라는 변호사가 등장한다. 그는 서한그룹의 사위이면서 그 재벌가를 지키는 변호사지만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그에게 가족이라고 손이 안으로 굽는 일은 좀체 없다. 그는 철저히 자기 이득에 따라 아무 쪽에나 붙을 수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는 서한그룹 비리의 증거를 갖고 있는 오혜원(김희애)을 구석으로 몰아붙이다가 거꾸로 그 증거를 공유하는 조건으로 그녀의 편으로 돌아선다. <밀회>가 그리는 김인겸이라는 인물은 아마도 가장 현실적인 변호사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변호사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고 어떤 일들을 하는지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드라마는 현재 방영되고 있는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이다. 이 드라마에는 차영우펌이라는 로펌이 등장한다. 차영우가 대표 변호사지만 이 로펌의 실질적인 에이스는 김석주(김명민). 그가 맡는 대부분의 일은 돈 많은 재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저지르는 온갖 비리와 악행들을 비호하는 것이다. 그는 로펌에 고용된 변호사로서 그 일이 어떤 일인가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저 회사의 샐러리맨으로서 이익이 되는 일을 하는 것뿐이다.

 

김석주는 일제에 강제 징용당한 어르신들의 반대편에 서서 일본기업을 변호하고, 재벌2세의 강간치상을 변호하면서 피해자 여자 연예인의 치부를 드러내 자살시도까지 하게 만든다. 그녀는 결국 죽은 재벌2세로 인해 살인혐의로 기소된다. 또한 그는 태안반도 기름 유출사고에 책임이 있는 기업을 변호하면서 어민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 가지 않도록 무려 5년 간이나 사건을 질질 끌기도 한다. 결국 이 때문에 몇몇 절망한 어민들은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에 봉사하는 전형적인 변호사인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 두 드라마가 모두 인물의 변화를 통해 상황을 역전시킨다는 점이다. 재벌가들의 하수인 역할을 해온 이들이 어떤 계기를 만나 마음을 고쳐먹는다는 것. <밀회>에서 오혜원은 순수한 청년 선재(유아인)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욕망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알게 되고 결국 자신이 비호하던 서한그룹 재벌가의 비리를 공개하고 스스로 죗값을 받는 길을 걸어간다. 자폭을 선택함으로써 법 정의를 다시 세우는 것. <개과천선>의 김석주는 어느 날 우연히 당한 사고로 인해 기억을 잃게 되고 과거 자신이 했던 짓들을 되새기며 조금씩 재벌가가 아닌 서민 편으로 돌아서는 개과천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 드라마가 모두 말해주는 건 법 정의라는 것이 어떤 인물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때 그 좋은 머리를 재벌가를 유지하고 비호하는데 써왔던 이들이 이제는 그들의 비리를 폭로하고 공격하는 입장에 선다는 점에서 이들 드라마는 현실에서 좀체 발견하기 어려운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에서 법은 정의의 편이 아니라 자본의 편이라는 것.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서민들을 위한 법은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작년 <변호인>이라는 드라마가 그토록 대중들을 열광시킨 이유는 바로 이 서민들을 위한 법 정의를 부르짖는 송우석(송강호)이라는 변호인이 슈퍼히어로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변호사가 아니라 변호인을 원한다. 변호사와 변호인의 차이는 그것이 직업적인 것이냐 아니면 인간적인 것이냐 에서 비롯된다. 직업적인 선택은 자본의 시스템에 지배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인간적인 선택을 희구하게 된다. 김석주 같은 자본의 첨병으로서의 변호사가 어느 날 억울한 이들을 위한 변호인으로 개과천선하는 것. 이것이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 되는 세상은 과연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