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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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꾼일지', 중요한 건 CG도 판타지도 아니다

D.H.Jung 2014. 8. 6.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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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꾼일지>, 정통사극 시대에 판타지 괜찮을까

 

MBC <야경꾼일지>의 첫 방송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시청률이 첫 회에 10%를 넘기며 월화 드라마 전체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워낙 타방송사의 월화 드라마들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쨌든 첫 회에 시선을 잡아끌었다는 건 괜찮은 행보라고 보여진다.

 

'야경꾼 일지(사진출처:MBC)'

판타지 사극이라는 사전 정보가 있었지만 첫 회에 몰아치듯 보여준 CG의 향연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볼거리쪽으로 집중시켰다. 시청자들의 의견에 CG 얘기가 대부분인 것은 그래서다.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시도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디워>에도 못 미치는 CG 수준에 실망했다는 평가도 있다. 확실히 CG로 등장한 이무기와 조선 왕이 활로 싸우는 장면은 의도는 창대했지만 실제 결과물은 B급 괴수물 같은 인상을 주었다.

 

판타지 사극이라는 기치를 내걸어서인지 <야경꾼일지>는 기존 동서양을 초월한 무수한 이야기들의 조합 같은 인상을 주었다. 궁궐로 쏟아지는 유성은 KBS에서 했던 사극 <전우치>가 떠오르고, 왕자를 죽이기 위해 좇는 구름 같은 귀물들은 <해를 품은 달>의 초반 CG를 연상시키며, 왕인 해종(최원영)이 원정대를 이끌고 백두산에 가는 시퀀스는 <반지의 제왕>을 떠올리게 한다. 흥미로운 건 거기 갑자기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처럼 등장한 스켈레톤 골렘을 없애는 방식이 부적을 붙이고 활로 쏘는 <강시>의 한 장면이라는 점이다.

 

이밖에도 판타지와 모험담에서 가져온 이야기 시퀀스가 이 사극에는 너무나 많다. 이를테면 백두산 마고족에게 왕만이 사용할 수 있는 활을 받는 장면은 <주몽>의 한 대목 같기도 하고 나아가 아더왕의 칼을 떠올리게도 한다. 또 용신족에게 재물로 잡혀간 마고족의 무녀를 이무기와 싸워 구해내는 장면은 <손오공>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야기 시퀀스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가 다양한 북구의 민담과 전설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처럼 동서양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와 사용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스토리의 확장면에서 권장되어야 될 일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렇게 조합한 이야기와 시퀀스들이 결과적으로 현대인들에게 어떤 정서적인 공감이나 만족감을 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제 첫 회를 마친 <야경꾼일지>는 아직 이 부분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

 

문제는 최근 들어 대중들의 사극에 대한 기호가 상당 부분 정통사극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점이다. <정도전>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고 지금 영화판에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는 <명량>이 그렇다. 이렇게 된 것은 퓨전사극이 점점 역사를 벗어내 이제는 아예 장르물처럼 변모한 것에 대한 반작용 때문이다. 사극의 핵심적인 힘은 결국 역사라는 팩트에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미 역사를 통해 뻔히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해도 현재에 울림을 주는 사실이나 인물을 조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걸 <정도전> 같은 정통사극은 보여주었다.

 

이런 시점에 판타지 사극을 아예 내걸은 <야경꾼일지>는 어떨까. 유성이 쏟아져 궁궐이 초토화되고, 이무기와 말을 타고 싸우는 왕의 장면이 새롭긴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이러한 CG가 아니라 사극이 담고 있는 현재적인 울림이다. <야경꾼일지> 첫 회는 일단 그 이색적인 CG로 시선을 잡아끄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것이다. 사실 판타지든 정통이든 중요한 건 단 하나다. 지금 현재의 시청자들이 왜 그걸 봐야하는가를 설득시키는 일. 그것만 있다면 충분하다. 과연 <야경꾼일지>는 그 설득을 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