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쩐의 전쟁’, 참 잘했어요 본문

옛글들/명랑TV

‘쩐의 전쟁’, 참 잘했어요

D.H.Jung 2007. 7. 6.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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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잘한 ‘쩐의 전쟁’, 끝이 아쉬운 이유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에 대한 욕망과 그 헛됨을 드라마를 빌어 함부로 얘기하는 건 참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칫 잘못하면 허망한 자기부정이 되거나 혹은 진부한 건전 드라마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쩐의 전쟁’은 다양한 장치(?)로 그 어려운 줄타기를 해낸 드라마다.

참 잘한 돈에 대한 풍자적인 접근
돈이란 소재가 얼마나 뜨끔한 것인가는 이미 이 드라마로 인해 촉발된 현실의 변화들에서 충분히 감지된 바 있다. 그러니 적당한 장치가 필요할 밖에. 이 드라마가 가진 만화적 연출과 스타일은 보다 극적인 상황을 만들면서 동시에 드라마와 시청자가 적당한 거리를 갖게 해준다. 만일 심각한 상황을 심각하게 보여주었다면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논란의 거미줄에 잡혀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저건 만화 같잖아’하며 심각한 상황이 넘어가는 순간, 거기에는 묘한 풍자의 힘이 생긴다. 풍자는 자기부정을 통해 비틀린 세태를 함께 비웃으면서 새로운 자기 인식을 일깨우는 장치이다.

‘사채업자들에 의해 모든 걸 잃은 금나라(박신양)가 스스로 사채업자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자체가 인간이 아닌 돈 중심으로 굴러가는 자본주의의 드러내기 싫은 속살을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글자로 표현될 때만 아이러니하게 보일 뿐, 실제 현실은 당연한 것이니까. 이 사회에서 돈을 받아쓰다가 돈을 벌게 되는 상황이 시작되는 것은 금나라와 같은 상실을 실제 겪거나 혹은 겪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길 때이다. 그 때부터 금나라처럼 돈을 좇는 인생이 시작된다.

그러니 사채업자로 변한 금나라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잠재적 욕망을 대리해주는 통쾌함을 가지지만 실제로는 시청자가 보기에 그다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돌아보면 결국 돈에 혈안이 된 인간(어쩌면 거기서 새삼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일 뿐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독특한 연출 스타일과 함께, 캐릭터 설정을 통해 금나라의 변신을 용인하게 만든다. 거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 인물이 있다. 하나는 금나라의 스승인 독고철(신구)이고 또 하나는 서주희(박진희)다.

독고철과 서주희가 말하는 ‘참 잘했어요’
독고철은 이 드라마 상에서 돈이라는 욕망이 또한 좋은 욕망이 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인물이다. 그러니 금나라가 돈 귀신의 구렁텅이에서 개처럼 구르며 마음껏 욕망을 탕진하는 상황에서 그를 구원해주는 인물은 독고철이 될 수밖에 없다. 독고철과 금나라와의 수직적인 관계는 마치 사회에서 간도 쓸개도 빼며 하루를 살아낸 샐러리맨이 집으로 돌아와 이미 그 같은 경험을 하고 탈속해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위안을 삼는 것과 같다. 그래서 독고철은 금나라가 무언가 일을 제대로 할 때 돈으로 보상해주는 것이 아니라 도장을 찍어준다. 우리네 아버지들처럼 ‘참 잘했어요’하고 등을 두드려준다.

하지만 그것은 집 안에서의 위안이다. 집 밖으로 나가면 돈 귀신에 슬쩍 슬쩍 자신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속출한다. 그래서 필요한 캐릭터가 수평적인 관계로서의 서주희다. 금나라가 서주희네 집의 빚을 해결해주고 그녀를 담보 삼는 순간, 그것은 금나라에게는 현실의 진창에서 구르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잠시 서주희에게 담보해주는 셈이 된다. 양심을 맡긴 채권자인 금나라는 흔들릴 때마다 담보인 서주희에게 달려와 맡겨둔 양심을 꺼내본다. 그가 아버지 같은 존재인 독고철에게서 배운 ‘참 잘했어요’라는 문구를 그녀의 채무노트에 찍어주는 순간, 스스로 ‘참 잘했다’는 위안을 받는다.

이 수직적인 관계로서의 독고철과 수평적인 관계로서의 서주희라는 캐릭터로 인해 금나라라는 돈에 대한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은 두 가지를 얻게 된다. 첫째는 그의 욕망에 기꺼이 시청자들이 이입될 수 있는 인물이 되었다는 점이며, 둘째는 상반되어 보이는 욕망으로부터의 탈주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에선 도통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박신양의 연기가 돋보이는 건, 이런 실현 불가능한 현실을 넘어선 이상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점도 한몫을 차지한다.

엔딩이 참 잘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
이것은 또한 ‘쩐의 전쟁’이란 드라마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이중적 잣대(욕망 추구와 그 헛됨)를 어느 정도는 성공적으로 그려낸 요인이 된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차츰 드라마의 힘이 약화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애초에 독고철과 서주희라는 캐릭터를 설정하면서부터 예기된 결과이다. 사실 드라마의 힘은 욕망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인 바, 돈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리던 금나라가 최초에 다시 돌아오기로 약속한 독고철과 서주희라는 인물에 집중하면서 그 힘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금나라의 욕망을 무너뜨리는 인물들이다.

드라마가 섣부른 해피엔딩으로 달려가지 않고 금나라를 정점에서 쓰러뜨리는 것은 장태유 PD 특유의 풍자의 칼날이 녹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지만 시청자들이 용납하기엔 어려운 설정이다. 독고철과 서주희라는 캐릭터를 설정했을 때부터, 장태유 PD는 금나라의 욕망을 끌어내리겠다는 생각을 한 셈이지만 그것이 꼭 그의 죽음으로 갔어야 했을까.

마동포가 원수라는 걸 알게된 금나라가 방황할 때, 독고철이 한 말이 있다. “너의 아버지를 죽인 건, 마동포가 아니라 돈”이라고. 결말은 금나라를 버리기보다는 돈을 버리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환타지적인 결론이라도 끄집어내는 게 안전했다. 이런 환타지가 싫다면 애초부터 독고철이나 서주희라는 캐릭터는 더 이상 금나라와 지금 같은 관계로 이어지지 말았어야 했다.

‘쩐의 전쟁’의 엔딩은 지금까지 금나라를 통해 욕망의 무한질주를 즐겨오다가, 차츰 그 욕망이 사라지자 아쉬워하면서도 여전히 그걸 그리워하는 작은 기대마저 부서뜨리는 힘이 있다. ‘쩐의 전쟁’은 그것마저 부수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그것은 아쉽게도 지금까지 ‘쩐의 전쟁’이 걸어온 길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드라마의 결말은 작가가 내고 싶어서 마음대로 내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납득할 수 있는 끝을 보여주는 것이다.

돈 버는 재미에 푹 빠졌다가 또 그 어수룩한 캐릭터들에 관조적인 입장이 되어 웃다가, 어느 순간 뜨끔한 기분을 느꼈던 시청자들은 이런 도장을 찍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 어려운 줄타기 “참 잘했어요”라고. 하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마지막 엔딩이 나온 후로 이 도장에는 반어적인 뉘앙스가 하나 더 붙게 되었다. 그것은 아쉽게도 비꼬는 투의 “참 잘했어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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