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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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마니아 드라마는 없다

D.H.Jung 2007. 7. 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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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시청률이 마니아 드라마 만든다

‘마왕’, ‘케세라세라’, ‘경성스캔들’, ‘메리 대구 공방전’, 이 드라마들의 공통점은 시청률은 낮지만 소위 말하는 대박 드라마만큼의 호평을 받는 드라마라는 것이다. 만일 시청률이 의미하는 것이 그만큼 호평을 받는다는 것이라면 이 ‘시청률 낮은 호평 받는 드라마’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래서 이상한 타이틀이 붙었다. 소위 ‘마니아 드라마’, ‘폐인 드라마’라는 것이다.

이 호칭이 붙는 순간, 그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마니아(심지어는 폐인?)가 되어버린다. 소수 취향에 특별한 광기(본래 마니아는 그리스어로 광기란 뜻)를 지닌 사람의 축에 끼게 되는 것. 하지만 진짜 그럴까. 그저 시청률에 의해 재단된 것은 아닐까. 만일 지금의 방식으로 산정되는 시청률이 현재 변화된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떨까. 마니아 드라마는 진짜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세대가 다른 프로그램에 대한 공감도
나이가 지긋하신 장년층 시청자분들은 ‘메리 대구 공방전’을 보면서 “도대체 저게 뭐 하는 것들이냐?”고 말한다. 등장인물들이 어려서가 아니라 그 독특한 스타일이 소위 말해 적응이 안 되는 것이다. ‘마왕’같은 작품은 아예 이해불가를 넘어서 고문에 가깝게 느껴진다. 작품 자체가 시청자들의 머리를 끝없이 추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소위 호평 받는 프로그램들 대부분에 대한 반응도 비슷하다. ‘무한도전’같은 프로그램은 “지들끼리 나와 떠드는 걸 뭐하러 보냐”고 하기 일쑤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어느 정도 학습이 필요하다. ‘메리 대구 공방전’을 재미있게 보려면 적어도 인터넷 소설이 주는 만화처럼 톡톡 튀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마왕’이 재미있으려면 적극적으로 추리를 해보겠다는 약간의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무한도전’이 재미있으려면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TV 속에서 보여지는 것들은 아무런 의미를 던져주지 못한다.

이것은 과거, 일방향적인 TV의 시청 행태로는 지금 같이 쌍방향적인 TV 프로그램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래서 장년층들은 채널을 돌린다. 이해할 수 있고 코드에도 맞으며 자신들에게 재미있는 프로그램에 고정시킨다. 일일가족드라마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나 현재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반면 똑같은 일일가족드라마라 해도 ‘거침없이 하이킥’처럼 어느 정도의 학습(적어도 이순재가 왜 야동순재로 떴는지는 알아야 한다)이 필요한 프로그램은 다르다. 시트콤이란 형식이 시청률에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20% 전후의 시청률에 머무르는 건 바로 그런 이유다.

TV와 컴퓨터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에게 TV란 그저 정보와 재미를 ‘전달’해주는 매체를 넘어서 그 전달된 정보를 통해 새로운 재미를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다. 인터넷이란 의견의 장은 그 재미를 무한히 증폭시켜준다. 그러니 그들은 기성세대들이 원하는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을 찾게된다.

여기에 인터넷 다운로드 방식은 빠르게 젊은 세대들의 시청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TV로 방영되는 시간에 맞춰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다운로드 받은 드라마 파일을 컴퓨터나 PMP 같은 뉴미디어를 이용해 아무 때나 보는 게 더 편하다. 심지어는 여러 편을 한꺼번에 보는 몰아보기를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TV가 기성세대의 매체가 되고 있는 반면, 젊은 세대의 매체로 뉴미디어들이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대간의 시청형태는 TV와 컴퓨터로 확실히 분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는 IPTV가 그것이다. 실시간으로 다운로드를 받아 프로그램을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이 마법의 장치는 인터넷과 TV가 만나는 지점에서 나온 것으로 과거 TV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 그 중 가장 첨예한 것은 실시간 시청이란 TV의 개념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것은 엄밀히 말해 TV이기에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들조차 편리한 도구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더 파괴적이다.

물론 이것은 이제 막 태동하는 TV의 진화이기에 그 변화의 양상이 피부에 아직까지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진화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시청형태의 변화는 곧 이루어질 거라는 점이다. 문제는 지금의 실시간 TV 중심으로 이뤄지는 시청률 산정이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거나 최소한 준비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마니아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마니아가 아니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시청률은 낮지만 소위 말하는 대박 드라마만큼의 호평을 받는 드라마’라는 말은 그 자체로 지금의 시청률 산정의 문제를 드러내는 게 아닐까. 그 호평은 특정 기관이 주는 것도 아니고, 몇몇 평론가들이 주는 것도 아닌 바로 시청자들이 주는 것이다. 따라서 호평을 받으면 시청률이 높고, 그렇지 못하면 시청률이 낮아야 당연한 것이다. 이 비례적인 등식을 반영하지 못하는 시청률이라면 그다지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 된다.

그깟 시청률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드라마나 보면 되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처럼 산정된 시청률이 광고라는 힘을 등에 업고 드라마를 제작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자칫 잘못하면 현재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시청률 산정으로 인해 드라마 제작이 기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것은 또한 미래의 시청자들을 지금부터 버리는 행위가 된다.

엄밀히 말해서 마니아 드라마는 없다. 오히려 마니아 드라마의 존재는 지금의 시청률 산정이 반영하지 못한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거꾸로 말해 마니아 드라마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시청률 잣대로 인해 소외될 수 있는 세대들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것이 마니아 드라마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마니아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마니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