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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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TV의 미래가 될까

D.H.Jung 2015. 5. 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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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쇼의 시대달라지는 TV와 감각

 

분할 화면 속에서 출연자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쇼를 보여준다. 김구라가 허구연을 게스트로 불러 야구를 소재로 한 구라를 늘어놓는 와중에 옆방에서는 AOA의 초아가 지민과 함께 섹시한 동작의 춤을 추며 노래를 한다. 마성의 백주부가 된 백종원이 고급진(?) 레시피로 시청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방송이 서툰 예정화 코치가 혼자 할 수 있는 몸만들기 노하우를 보여준다. 따라해 보라는 예정화 코치의 말과는 상반되게 시청자들은 그의 몸매에 더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렇게 본말이 전도된 관전 포인트는 이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다른 예능에서는 온갖 성대모사 개인기로 펄펄 날던 강균성이 이 방송에서는 별로 힘을 쓰지 못하자 갑자기 소품을 부수며 시청자들의 분노를 대신 풀어주겠다고 나서는 것도 이곳에서는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사진출처:MBC)'

만일 과거의 프로그램들에 익숙한 세대라면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곤혹스러운 방송이 아닐 수 없다. 과거의 프로그램들을 떠올려보라. 하나의 주제를 갖고 모두가 일관된 이야기를 하거나 행동을 보이는 것이 과거 방송이 보여준 안정감이 아니던가. 하지만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한 스튜디오가 여러 출연자들의 방으로 조각조각 잘라져 있다. 분할 화면이 표징하는 것처럼 방송 내용은 끊임없이 툭툭 튄다. 백주부의 요리방송을 보는가 싶더니 갑자기 예정화 코치의 트레이닝이 이어지고 잠시 뒤 김구라와 허구라의 야구 이야기가 연결된다. 이건 정신집중이 몰입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온 이들에게는 난감한 흐름이다. 하지만 정신분산이 또 다른 몰입의 하나로 다가오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지루할 틈이 없는 재미로 다가온다.

 

과거 <무한도전>이 각각의 출연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카메라를 들이댐으로써 보다 복잡한 이야기들을 풀어냈던 것들을 떠올려보라. 당시만 해도 이 리얼 버라이어티의 화면은 복잡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리얼 버라이어티의 화면은 적응되다 못해 심심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미디어는 감각을 바꾼다. 컴퓨터 화면에 여러 개의 창을 띄우며 동시에 여러 일을 하는 것이 익숙해진 지금의 세대들은 한 개의 창을 오래도록 쳐다보는 것이 몰입을 시키기는커녕 하품 나오는 지루함으로 다가온다. ‘클래쉬 오브 클랜같은 게임을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여러 캐릭터들에게 각자의 역할을 부여하고 그 기능들을 조합해 무언가를 도모하는 일이 그리 낯선 것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바야흐로 정신집중의 시대는 가고 정신분산의 시대가 도래했다. 분산 속에서 집중하고 종합하는 새로운 감각들이 미디어에 의해 훈련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시청자들은 이제 한 가지에 집중하기보다는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즐기고 싶어 한다. 당연히 이처럼 분산되고 분할된 방송에는 담겨지는 것도 달라진다. 강균성의 개인기는 많은 출연자들이 한 자리에 나와 서로를 뽐내는 무대에서는 주목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처럼 방으로 구획되어 혼자 방송을 해내야 하는 틀에서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대신 일일이 시청자들의 반응에 하나하나 대응을 해주는 백주부가 요리 노하우를 선보이며 해주는 내밀한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다이어트 따위는 잠시 잊어버리라는 오로지 맛의 전도사처럼 말하는 백주부의 멘트는 마치 시청자에게만 귀뜸해주는 요리사의 귓속말처럼 달콤하게 들린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스튜디오에서 벌어지지만 하나의 리얼리티쇼이기도 하다. 이 스튜디오가 하나의 집 구조를 갖고 있고 출연자들이 각각의 방에서 개인방송을 한다는 건, 리얼리티쇼가 보여주는 사적 영역을 상당부분 강화해주고 있다. 예정화 코치가 트레이닝을 하는 와중에 댓글로 수영복을 입고 트레이닝하면 시청률 1위를 차지할 거라고 올라오는 건 그래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시청자들은 마치 CCTV 폐쇄회로 속의 인물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처럼 호기심어린 눈으로 방송 외적인 것들에도 관심을 보인다. 방에서 벌어지는 개인들의 모습. 스튜디오로 끌어들인 리얼리티쇼의 새로운 해석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이처럼 달라지고 있는 미디어와, 그로 인해 달라지는 감각들을 방송 형태로 끌어안은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각의 변화는 서서히 일어난다. 따라서 지금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지상파의 시청자들이 얼마나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할 지는 미지수다. 미래를 보고 던지는 시도에 낮은 시청률은 어쩔 수 없는 숙명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래의 TV 시청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은 이 개인방송들이 저마다 안간힘을 쓰는 이유가 시청률 1위를 달성하기 위함이라는 건 이 프로그램 역시 시청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말해준다.

 

재미있는 건 프로그램이 낮은 시청률을 갖고 있어도 이들이 벌이는 자기들끼리의 시청률 경쟁은 흥미진진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물론 지금의 시청률 추산이 달라진 미디어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마이 리틀 텔레비전>리틀이라는 수식어를 달 정도로 겸양을 보이고 있지만 그것이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에 동시 방영된다는 포부또한 엿보인다. 어쩌면 미래의 TV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신념 같은 것이 거기에서는 느껴진다. 과연 <마이 리틀 텔레비전>TV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적어도 우리의 감각이 변화해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