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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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영화로 세상보기

‘디워’의 재미와 아쉬움

D.H.Jung 2007. 7. 26.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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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라는 블록버스터의 재미는 어디서 오나

주로 게임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난 우리네 CG기술은 주로 해외 게임업체들의 하도급 형태로 공력을 쌓아왔다. 해외 게임업체들이 우리나라 CG 샘플을 보고 놀라는 것은 ‘그 정도의 제작비로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CG를 만들어내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당시의 CG 기술들은 이후 게임업체들에 의해 활용되면서 지금의 우리네 게임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커다란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영화 쪽에서의 CG 활용은 제한적이었다. 주로 폭파장면 같은 특수효과쪽에 활용은 되었지만, 전략적으로 CG를 활용한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전 세계를 공략하는 할리우드 같은 시도는 별로 없었다. 그만한 제작여건도 거의 전무인 상태인데다 투자는 어불성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심형래 감독이 들고 나온 ‘용가리’는 사실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총체적인 부실로 드러났다. 스토리는 둘째치고 CG는 실감나지 않았고 출연한 인물들조차 연기력 논란을 일으킬 정도였다.

당시 CG가 실감나지 않은 것은 캐릭터를 모델링하는 능력이나 동작을 구현하는 애니메이션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었다. 문제는 할리우드가 가진 CG와 실사를 합성하는 기술과 노하우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절치부심한 심형래 감독이 ‘디워’의 어떤 부분에 모든 정력을 쏟았을 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실제 결실로 나타났다. ‘디워’가 보여준 CG와 실사의 합성 노하우는 아직까지 우리 영화가 보여주지 못한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아마도 CG에 관심이 있거나 같은 업계에 일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먼저 그 압도적인 CG에 혀를 내두를 것이다.

하지만 시사회 이후 ‘디워’에 계속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스토리다.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의 반응은 하나 같이 스토리가 엉성한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심형래 감독조차 인정한 바이다. 그의 논지는 ‘스파이더맨’이나 ‘트랜스포머’, ‘킹콩’, ‘쥬라기공원’, ‘인디펜던스데이’를 예로 들어 그 영화들의 스토리 역시 별 것 아니며, 블록버스터는 스토리와 상관없이 볼거리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지는 지금 인터넷에서 ‘디워’를 두고 벌어지는 설전의 중심에 서 있다.

실제로 최근 할리우드에서 개봉했던 일련의 블록버스터들, ‘스파이더맨3’, ‘캐리비안의 해적3’는 물론이고 ‘트랜스포머’까지 시나리오의 스토리로 보면 그다지 대단할 것 없는 전개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심형래 감독이 얘기하듯이 블록버스터(아마도 SF나 환타지 블록버스터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의 재미가 인물이나 뒤통수를 치게 만드는 기발한 스토리 전개 같은데 있는 게 아니라 실상은 볼거리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할리우드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형 CG에 엄청난 물량을 투여하고 그 위험부담을 맥도날드 같은 다국적기업과 나누며, 전 세계 배급망을 확보해 개봉 1,2주차에 모든 마케팅비용을 쏟아 부어 투자금을 회수하고 수익을 올리는 과정 속에서, 저변을 되도록 넓히기 위해 스토리는 절대로 복잡해서는 안 된다. 단순한 스토리에 대신 영화는 철저히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재미에 집중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블록버스터가 지향하고 있는 지점은 흔히 예술영화나 극영화가 제시하는 삶의 비의 같은 것이 아니다. 재미에 집중된 이 영화들의 지향점은 영화의 또 한 가지 갈래가 될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다. 실제 지금 극장들은 이 방향으로 진화해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자잘한 캐릭터의 디테일이나 대사의 집중도보다는 블록버스터가 보여주는 볼거리의 참신함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을 또다시 돈을 내고 본다는 것은 어딘지 아까운 일이다. 심형래 감독이 언급한 스토리가 그저 그런 ‘스파이더맨’의 재미는 거미인간이 뉴욕의 도심을 휙휙 날아다닌다는 점이며, ‘인디펜던스데이’의 재미는 외계인이 도시를 때려부순다는 그 설정에 있고, ‘트랜스포머’의 재미는 변신로봇 자체가 주는 유아적 욕망이 눈앞에서 실현된다는 점에 있다. ‘킹콩’의 재미는 이 거대한 생물체가 도시라는 정글을 마구 때려부수는 장면들의 재미이며, ‘쥬라기공원’은 공룡을 실제로 본다는 그 자체가 재미이다. 이 블록버스터들은 모두 볼거리의 참신함에 있어서 훌륭한 CG와 만나면서 충분한 만족감을 주었다.

그렇다면 ‘디워’가 가진 볼거리의 참신함은 어떨까. 먼저 용이 되어야 한다는 이무기라는 소재, 조선시대에 도성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관군들과 이무기 군단들과의 전쟁 설정 같은 것들은 참신하다. 게다가 후반 40분 동안 폭풍처럼 몰아치는 LA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이무기와 헬기, 탱크, 비행기들의 액션 장면들은 ‘디워’라는 롤러코스터가 가진 볼거리라는 측면의 가능성을 충분히 담보하고도 남는다. 여기에 CG의 디테일을 감안해서 본다면 볼거리의 재미는 더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들이 있다. 우리의 관객이나 외국의 관객 모두에게 특별한 볼거리가 될 수 있었던 조선시대 장면들이 특수촬영으로 이루어지면서 어딘지 CG의 힘을 약화시켰다는 점이다. 또한 최고의 CG 실사 합성 능력을 보여준 LA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장면들은 기존 블록버스터의 전통에 충실한 맛은 있지만 아쉽게도 ‘디워’만의 차별성을 찾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한 평론가는 “차라리 LA가 아니라 남산타워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부수는 이무기였다면 더 볼거리가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 부분에 일부 공감하게 되는 것은 영화 속에서 관습적으로 괴수나 적의 공격을 받는 LA나 뉴욕이라는 도시를 너무 많이 봐온 탓은 아닐까.

아리랑을 영화음악으로 삽입할 정도로 한국적인 걸 강조하는 심형래 감독도 미국시장을 두드리기 위해서는 타협해야될 부분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적인 정서를 강조한다는 것 자체가 미국시장 속 블록버스터 공식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안전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블록버스터에 있어서 우리 것을 조금 더 고집하는 것이 위험성은 있겠지만 결국 새로운 볼거리라는 측면에서 미국시장과 우리시장을 다 노릴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