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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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용팔이'가 분노사회에 던지는 작지 않은 메시지

D.H.Jung 2015. 9. 2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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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팔이>, 주원의 활인검, 김태희의 살인검

 

죄는 어떻게 탄생할까. 그것은 사람이 저지르는 일일까. 아니면 권력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어내는 것일까. 깨어나 모든 권력을 쥐게 된 한여진(김태희)이 하고 있는 처절한 피의 복수는 과연 정의일까. 아니면 그것은 또 다른 죄일까. 드라마 <용팔이>가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던지고 있는 질문들이다.

 


'용팔이(사진출처:SBS)'

병원 VIP 병동에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갇혀 있던 한여진은 자신을 그렇게 묶어둔 감옥을 무너뜨리겠다고 했지만, 막상 왕좌에 오르자 그 병동을 복수의 공간으로 활용하려 한다.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던 한도준(조현재)을 그 병상에 눕혀놓고 자신과 똑같은 고통을 맛보게 하려는 것.

 

한여진이라는 인물의 이런 드라마틱한 변화는 사실상 뻔하게 여겨졌던 <용팔이>의 후반부를 팽팽하게 만든 묘수다. 한여진은 자신을 구원해준 김태현(주원)에게는 뭐든 다 해주려고 하는 천사지만, 자신에게 고통의 감옥을 선사했던 이들에게는 죽음의 공포에 떨게 하는 악마다. 실제로 그녀는 말 한 마디에 사람의 생명을 거둬갈 수 있는 권력을 갖게 되었다.

 

김태현과 한여진의 대립은 그래서 흥미롭다. 김태현은 분노와 복수가 정의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며 한여진을 막아 세우고, 한여진은 스스로를 악어들의 제왕이라고 칭하며 자신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 물어뜯길 것이라는 이 비정한 세계의 생태를 말해준다. 분노와 복수의 기저에는 생존하려는 안간힘이 깔려 있는 것.

 

의학드라마가 의술로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용팔이>의 이 후반부는 그래서 김태현이라는 의사가 의술이 아닌 사랑과 설득으로서 한여진을, 아니 세상을 살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여진 한 사람을 구원하고 그 폭주하는 복수를 막으며, 사람 살리는 공간이 아닌 사람을 죽이고 범죄를 저지르는 VIP병동을 없애는 일은 또 다른 세상을 살려내는 일이다.

 

한여진이 든 권력의 칼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검(殺人劍)이라면 김태현이 든 메스는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活人劍)이다. 김태현은 이 문제가 개개인의 복수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문제를 양산시키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여진을 죽이려 했던 이과장(정웅인)이 사실은 그녀를 살려낸 장본인이고 본래 선량하고 능력 있는 의사였지만 의료사고를 내고 궁지에 몰리자 살아남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들을 해왔다는 사실을 김태현은 그녀에게 얘기해준다.

 

그것은 이 비정한 권력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비극이다. 한여진을 살리기 위해 의사들이 다 그곳으로 몰려감으로써 김태현의 어머니가 제 때 수술을 받지 못해 죽게 된 사실을 알고도 김태현이 그 복수와 분노의 칼날을 한여진을 향해 세우지 않는 건 그래서다. 그는 이것이 VIP 병동으로 상징하는 부조리한 권력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용팔이>가 그리고 있는 한신 병원이라는 공간은 그래서 우리 사회가 가진 권력 시스템의 축소판처럼 그려진다. 갑과 을로 나뉘어진 채 갑질에 을들이 분노하고는 있지만 그러한 분노와 복수만으로는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걸 <용팔이>는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태현이 말하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저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VIP 병동을 무너뜨리고 그 곳이 범죄의 온상이 아닌 빈부귀천과 상관없이 사람 살리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일.

 

현재의 우리 사회를 분노사회’, ‘보복사회라고까지 칭하게 된 건, 이른바 갑을 정서가 그 끝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 사회면을 가득 메우는 그 많은 갑질들에 대한 이야기들과 거기에 공분하는 대중들의 욕망들. 하지만 이러한 분노와 복수가 진정한 정의를 세워낼 수 있을까. 중요한 건 그것이 사적인 복수가 아니라 잘못된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라는 점이다. 비록 허구로 그려진 드라마지만 <용팔이>의 이런 관점은 우리네 현실에도 많은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