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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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프’의 동성애 코드가 말해주는 것

D.H.Jung 2007. 8. 21.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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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프’는 동성애 드라마가 아니다

‘동성애’란 금기의 단어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을 타고 수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일부에서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을 마치 동성애 드라마나 되는 듯이 여기면서, 우리 사회가 터부시하던 ‘동성애’에 대해 이제 관대해졌다는 섣부른 관측을 하기도 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분명 장치로서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자체를 동성애 드라마라 하기에는 지나친 면이 있다. 

헐리우드발 감동의 휴먼 드라마, ‘브로크백 마운틴’, 최근 게이 커플이 등장했던 ‘후회하지 않아’는 동성애 영화다. 이 영화들은 그 기본설정 자체가 동성의 커플의 애틋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 다만 동성애를 다루는 시각은 조금씩 다르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동성애를 통해 인간애를 보여줬다면, ‘후회하지 않아’는 바로 그 동성애라는 자체에 집중하면서 존재와 계급의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영화다.

모두 좋은 영화지만 이 두 영화는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주류영화 속에 들지 않는다. 그것은 동성애라는 금기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10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왕의 남자’를 두고 동성애라는 금기의 벽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왕의 남자’의 성공은 예술과 권력 사이에서의 멋진 줄타기를 보여줬기 때문이지, 공길과 장생이 서로를 바라보는 애틋한 동성애 감정 때문이 아니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는 동성애를 가로막는 사회적 제약이 등장하지 않는다. 동성애 영화가 그렇게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사회적 금기와의 관계에서 기인하는 면이 있다. 따라서 그런 면이 부각되지 않는 ‘왕의 남자’를 동성애 영화라 부르는 것은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루는 컨텐츠들은 과거부터 늘 마이너 문화였고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 성공한 이유는 그것이 동성애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동성애 코드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찬(윤은혜)이 자신이 사실은 여자였다고 밝히는 순간, 드라마가 재미없어졌다 느껴지는 것은 동성애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 재미의 핵심요소였던 동성애 코드가 빠졌기 때문이다.

시청자도 알고 극중 인물들도 아는 남장여자를, 자신만 남자라 생각하고 그러면서도 사랑할 수 있다(이 정도로 사랑한다!)는 한결(공유)이 사랑스러운 것이지, 한결이 모든 사회적 억압의 틀에도 불구하고 실제 남자를 사랑해서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소위 말해 ‘동성애 코드’를 멜로의 장치로서 활용하고 있을 뿐, 동성애 드라마는 아니다. 즉 동성애 소재 컨텐츠와 동성애 코드는 오인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동성애 코드는 지금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류 컨텐츠 속에 이미 훌륭한 장치로서 활용된 바 있다. 그 첫 번째는 아무래도 ‘왕의 남자’가 될 것이다. ‘왕의 남자’가 왕과 장생, 공길 사이의 치정극이 되지 않고 예술가들의 고뇌와 권력의 문제를 다룰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동성이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또한 국민의 4분의 1이 ‘왕의 남자’ 속에 등장하는 동성애를 부담 없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남사당패의 역할놀이(남녀 구분이 없다)가 갖는 예술적인 승화가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연장선상에 있는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가 애초에 남녀 관계 설정을 버리고 매니저와 한물 간 스타의 남남 관계로 재구성된 것은 똑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렇듯 동성애 코드는 종종 이제는 식상해져버린 남녀 관계의 멜로 틀을 벗어 던지기 위한 장치로서도 활용된다. 남녀간의 사랑보다는 의리나 우정이 더 참신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동성애 코드는 또한 작품의 조미료처럼 활용되기도 한다. ‘주몽’ 같은 남성적인 느낌의 드라마에서도 협보(임대호)와 사용(배수빈)의 동성애 코드가 쓰인 것은 그 설정이 갖는 코믹적 요소와 화제성을 십분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발칙한 여자들’에서 상미(사강)의 남편 지환(장동직)이 동성애자라는 설정 역시 드라마의 재미를 높이기 위한 방식으로 채택된 것이다.

하지만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멜로의 재미를 주기 위한 동성애 코드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남장여자란 캐릭터와 금녀의 공간으로서의 ‘커피 프린스 1호점’이다. 동성애 코드에는 종종 남장여자 같은 털털한 이미지의 여성이 등장하는 이유는 여성성으로 억압되던 과거의 캐릭터들에 대한 혐오가 그 출발점이 된다. 소위 말해 예쁜 척 하는(혹은 해야만 하는) 여성 캐릭터에 대해 현대여성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다. 즉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바로 여성들의 사회적 발언권이 남성들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앞서나가는 현 세태의 공감 가는 캐릭터를 창출하는 차원에서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면이 있다.

또한 남장여자 같은 중성적 캐릭터의 매력과 더해져 효과를 보고 있는 장치는, 이 캐릭터가 ‘금녀의 공간’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즉 억압하는 존재로서 섞이기 어려웠던 남성들 사회에 들어가, 연애나 애정관계가 아닌 (남성과의) 동지관계나 의리를 경험하는 것은 그 자체로 짜릿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동성애 코드와 항시 같이 미소년들이 등장하는 것은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선택하려는 남성으로서 미소년은 언제나 환타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남성 선택은 성적인 선택이 아니라, 팬시적이고 환타지적인 면이 더 강하다.

‘커피 프린스 1호점’를 비롯한 최근의 동성애 코드는 달라지고 있는 남성-여성의 관계까지를 함의하고 있다. 그것은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관계에서 수평적이고 해방적인 관계를 구성하기 위해 똑같은 성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비록 환타지지만, 그만큼 남녀 관계에서의 비뚤어진 수직구조들을 벗어나려는 강력한 욕망의 발현으로 읽혀진다. 이들 동성애 코드의 드라마들이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 같은 인간애의 성격을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