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사람냄새 나는 드라마,‘완벽한 이웃…’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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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냄새 나는 드라마,‘완벽한 이웃…’

D.H.Jung 2007. 8. 2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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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에 끌리는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한 때 SBS 금요드라마를 보면서 ‘어 이거 금요일 맞아?’하고 의아함을 느끼게 만든 드라마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정지우 작가의 ‘내 사랑 못난이’다. 이 시간대의 드라마들은 대부분 성인극을 들고 나와 보기에 민망한 불륜과 치정을 드러냈던 반면, 이 드라마는 보는 이의 측은지심을 자극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에서 ‘내 사랑 못난이’의 진차연(김지영)이나 호태(김유석), 신동주(박상민), 정승혜(왕빛나)의 면면이 떠오르는 건, 정지우 작가가 일관적으로 갖고 있는 인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같기 때문일 것이다.

백수찬(김승우)의 부성애는 진차연의 모성애를 떠올리게 하고, 백수찬과 친구 먹은 정윤희(배두나)는 측은지심 가득한 호태를 닮았다. 겉으로는 얼음이지만 착하고 따뜻한 내면을 가진 유준석(박시후)은 저 신동주를 떠올리게 하고, 묘한 삼각관계 속에서 때론 냉정하지만 결국은 착한 내면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되는 고혜미(민지혜)는 정승혜란 캐릭터의 연장선으로 보여진다. 또한 ‘내 사랑 못난이’가 금요드라마의 틀을 벗어날 수 있었던 주인공 주변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고스란히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의 도처에서 반짝거리는 이웃들의 모습으로 살아난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내 사랑 못난이’와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사랑 못난이’가 아무래도 금요드라마라는 틀 안에서 세련됨보다는 직접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설정들이 많았던데 비해,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물기와 기름기를 쪽 뺀 듯한 느낌이다. 사랑과 배신 같은 ‘내 사랑 못난이’의 기본 설정 구도가 가진 질척거림은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에 와서는 이웃 간의 사랑과 의리 우정 같은 코드로 엮이면서 발랄해진다.

“진가년 그년에게서는 사람냄새가 나”라는 조옥자(여운계) 여사의 말을 통해서 이 세상 못난이들의 잘난 이들과의 한판 승부가 바로 그 사람냄새에서 결판날 것을 암시한 정지우 작가는, 이야기를 이웃으로 가져와 진짜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를 하려 작정한 듯 하다. 제비라는 것이 들통났어도, 또 허울좋은 개살구로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됐어도 행복마을 사람들은 백수찬과 그 집에 더부살이하는 양덕길 부자를 걱정한다. 특히 도저히 농촌총각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정미희(김성령)는 바로 그 측은지심으로 인해 점점 양덕길에게 끌리는 중이다. 그것은 역시 언발란스 하기만 한 정윤희가 얼음처럼 차갑기만 한 유준석 실장을 특유의 독특함(?)으로 녹이는 것과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저 ‘내 사랑 못난이’에서 호태가 그저 주변 인물이 아니었듯이, 이들 중심인물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이다. 아끼라는 말이나 할 줄 알았지 따뜻한 말 한 마디 못해줬던 아내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자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는 김대식(김동균), 사랑한다는 미명 하에 아내를 구속하는 위대한(박광수), 집에서는 잘난 마누라와 자식 땜에 회사에서는 직장 상사들에게 굽신거리느라 기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살아가는 변희섭(이원재)이란 캐릭터들이 그들이다. 특히 “나는 남자들의 삶이란 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 자식에게 제 살점 하나씩 떼 주면서 그렇게 사는 거지.”라 말하는 변희섭이란 캐릭터는 물이 오른 듯한 이원재의 어눌한 연기에 덧붙여져 보는 이들을 짠하게 만든다.

이 드라마의 미덕은 이처럼 자꾸만 보고 싶게 만드는 반짝반짝 빛나는 못난이 캐릭터들에 있다. 이 캐릭터들을 갖고 드라마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이 ‘인간다움’에 서로 끌리는 이야기를 엮어간다. 그것은 백수찬이란 전직 제비와 정윤희의 우정관계, 정윤희라는 개념상실 비서와 얼음장같은 유준석 실장의 사랑관계, 농촌 총각으로 결혼 한 번 해보지 못한 양덕길과 무려 세 번의 이혼을 한 정미희의 애정관계에서만 멈추지 않는다. 좀더 시각을 넓게 해서 보면 좀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행복마을 사람들의 이웃으로 엮인 공존 자체가 어떤 희망 같은 것을 기대하게 만든다. 정지우 작가가 말하려는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그러니까 빈부나, 출신, 계층, 지역, 남녀 같은 것을 넘어서는, 인간이라면 갖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것, 바로 ‘사람을 사람냄새 나게 만드는 그 무엇’에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