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개그, 리얼리티만이 살길이다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개그, 리얼리티만이 살길이다

D.H.Jung 2007. 9. 13. 09:35
728x90

미래 개그맨의 자질, 순발력, 개인기, 연기력

모든 것은 무대개그의 시작을 알린 ‘개그콘서트’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그간 개그의 양대산맥으로 내려오던 ‘유머일번지’류의 콩트 개그와 ‘일요일 일요일 밤에’류의 토크쇼가 갖는 ‘안전함’의 틀을 깼다. 그 ‘안전함’이란 두 가지 측면을 말한다. 경쟁이 없다는 것과 일방향성 개그라는 것.

무대개그는 개그맨들의 무한경쟁을 알리는 신호탄인 동시에, 관객과 개그맨이 호흡하는 개그의 쌍방향 시대를 예고했다. 개그는 더 이상 스튜디오에서 안전하게 짜진 형태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연달아 ‘웃찾사’, ‘개그야’가 같은 형식으로 경쟁에 뛰어들면서 이른바 개그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무대개그 역시 한계의 징후들을 보이고 있다.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양한 개그를 쏟아져 나오게 했던 바로 그 무한경쟁에서 비롯된다. 경쟁하는 개그가 가져오는 개그 컨셉의 단명으로 인해 웃음은 있어도 웃기는 자는 부각되지 않는 상황을 맞게 된 것.

과도한 경쟁 속에서 참신하고 실험적인 시도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이것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게 되자 너무 빠르게 소비되는 현상을 불러온 것이다. 지금 무대개그 프로그램들이 쏟아내는 아이디어들은 계속 쳐다보고 있지 않으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진화 자체는 발전적인 것이지만, 너무 빠른 진화는 단명을 낳는다.

무대개그의 가장 큰 영향, 리얼리티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무대개그들이 현재의 개그 프로그램들에 준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무대개그가 갖는 현장성, 대전성격, 몸 개그 같은 요소들은 ‘무한도전’이나 ‘타짱’ 같은 개그 프로그램에 직ㆍ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그 중 무대개그가 개그 프로그램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리얼리티’다.

만일 지금의 무대개그 이후, 포스트 개그 프로그램을 예측하면서 가장 먼저 갖추어야할 요건을 말하라면 바로 ‘리얼리티’가 될 것이다. 이것은 비단 개그 프로그램만의 문제는 아닐 정도로 TV 전체 프로그램의 기본 요건이 되어가고 있다. 더 이상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빼앗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리얼리티’에 의해 부각되는 것은 즉흥성(애드리브)이다. 짜진 틀 밖의 어떤 즉흥적인 대사가 순간적인 리얼함을 확보하면 웃음이 유발되는 것. 최근 개그 콘서트에 신설되어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애드리브라더스’는 그 대표적인 형식이 될 것이다.

리얼리티와 연관되어 더 확장되어질 것으로 보이는 것은 ‘현장성’이다. 관객의 반응을 좀더 포착해내기 위해 좀더 관객 속으로 개그가 이동한다는 말이다. 무대개그 속에서 카메라가 공개홀을 벗어날 수 없다면, 그 공감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무대를 벗어나 현장 속에 뛰어드는 저 ‘막무가내 중창단’류의 현장개그가 가진 현장성이 중요해진다.

또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개그의 인해전술(한 코너에 등장하는 개그맨들의 숫자는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증가했다)로 이것은 개그맨들의 희소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양적으로 팽창된 개그맨들은 또한 그 속에서 살아남은 몇몇 개그맨들의 개인 브랜드화를 부추긴다. 이렇게 스타가 되어 브랜드화된 개그맨은 저 ‘무한도전’의 경우처럼 리얼리티에 흠집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실제상황인지 아니면 브랜드화된 개그맨의 연기인지 헷갈리게 되는 것이다.

개그맨들은 참신하지만 다수 속에 익명으로 존재하거나, 유명해졌지만 브랜드화되어 식상해지는 양쪽의 압박을 받게 된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개그 하는 층의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개그맨 자체가 브랜드화 되자 그 사라져 가는 리얼리티를 확보하기 위해 일반인들(여기는 개그맨이 아닌 타 분야의 탤런트도 포함된다)의 개그 진출이 활발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이미 UCC를 활용하는 쇼 프로그램(예를 들면 스타킹 같은)을 통해 전조를 보이고 있다.

개그맨의 자질, 순발력, 개인기, 연기력
이렇게 변화되는 상황 속에서 개그맨들이 우선적으로 갖춰야 하는 자질은 뭐가 있을까. 그 첫 번째는 순발력이다. 순간적인 촌철살인의 말 몇 마디와 행동 한두 개로 좌중을 휘어잡을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해진다. 이 순발력과 함께 강조되는 것은 개인기다. 읽고 듣는 것보다는 보는 것에 더 민감해진 세대들에게 말 개그는 아무래도 몸 개그가 가진 파괴력을 따라가기가 어렵다. 게다가 몸 개그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에서 점점 글로벌한 환경 속에서 개그를 해야 하는 개그맨들의 필수무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리얼리티 개그의 또 한 측면은 그 반작용으로서의 콩트 개그를 촉발시킬 가능성도 있다. 오히려 꽉 짜진 틀 속에서 ‘정극을 하는 개그맨들’을 통해 웃음을 유발시키는 것. 이것은 전통적으로 ‘개그맨은 연기자’라는 등식과도 연결된다. 따라서 개그맨이 만약 순발력과 개인기로 주목을 받고 점점 성장해 자체 브랜드화 된다면 그 생명력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해지는 것은 이제 연기력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아담 샌들러 같은 연기파 코미디언이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개그 프로그램들은 진화의 진화를 거듭해오고 있다. 그 진화 과정 속에서 당연히 발생하는 것은 다양해진 개그 프로그램들이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결과적으로는 좀더 공감을 넓혀갈 수 있는 웃음의 초석이 된다는 점에서, 그 어느 것도 실패라는 낙인을 쉽게 찍을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개그 프로그램은 현재 승승장구하건, 혹은 주목받지 못하건 그 살을 깎는 노력들의 융복합으로서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바로 ‘리얼리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