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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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인트', 어째서 김고은은 노라고 말하지 못할까

D.H.Jung 2016. 2. 24.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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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인트>,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뒤틀어지게 했나

 

왜 홍설(김고은)은 누군가의 요청에 대해 노(No)라고 자신있게 거절하지 못할까. tvN <치즈 인 더 트랩>에서 홍설이 걸린 덫은 다름 아닌 본인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 가장 크다. 그녀는 좋게 보면 마음에 걸리는 것을 못견뎌하는 오지라퍼지만 나쁘게 보면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빠진 양다리녀처럼 보인다. 물론 거기에 그녀의 의도가 들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어쩌다 보니 그녀의 성격이 그렇게 자신을 만든 것이다.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많은 이들이 이미 유정(박해진)과 공개적인 연인 사이를 선언한 그녀가 백인호(서강준)에게 선을 긋기를 바란다. 그것이 유정과의 관계를 위해서도 또 백인호를 위해서도 좋은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정과 연인 사이이면서 그녀는 동시에 백인호라는 친구(?)에게도 좋은 사람으로 남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건 욕심이다. 백인호가 그녀를 친구가 아닌 여자로 바라보고 있는 한.

 

홍설의 이런 성향은 단지 남자관계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그녀의 대학생활에서도 똑같은 성향이 나타난다. 유정이 자신만 보라며 준 노트를 본 선배들은 그것을 복사해 공유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유정도 자신도 그것이 영 탐탁찮다. 그런데 그녀는 똑 부러지게 그건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한다. 물론 그들이 나누는 뒷얘기를 듣고 선배에게 처음으로 노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본래 성향은 아니다.

 

왜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을까. 그것은 거꾸로 말하면 그것만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라 그녀가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절친인 보라(박민지)마저 그녀의 치명적인 매력(?)성실함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있는 집의 전세를 빼고 집으로 들어오라는 엄마의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동생을 위해 희생해온 그녀는 결국 폭발하고 말지만 그건 오래도록 그녀에게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그 강박관념이 얼마나 힘겹게 자신을 짓누르고 있었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러고 보면 <치즈 인 더 트랩>의 삼각구도를 이루는 홍설, 유정, 백인호 모두 저마다의 뒤틀어진 내면들을 갖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유정은 과거 친구들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 때문에 극도의 자기 보호 본능을 갖고 있고 그것은 때로는 공격성을 띄고 누군가를 파괴하기도 한다. 백인호는 자신이 유정에게 당했던 일 때문에 끝없는 피해의식 속에서 살아간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이나 꿈마저 억압하는 것이지만 그 자기 파괴적인 삶은 빚을 갚으라는 깡패들이 등장함으로 인해서 자기에게 멈추지 않는다. 주변까지도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

 

<치즈 인 더 트랩>은 이토록 조금씩 뒤틀어진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걸까. 그들의 중심에 서 있는 홍설의 착한 여자 콤플렉스는 유정의 공격성과 백인호의 자기 파괴적인 삶과 연결되어 어떤 기폭제가 되어간다. 시청자들이 불편한 지점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조금은 편안하고 달달한 유정과 홍설의 멜로를 기대하지만 그들이 처한 현실로 인해 뒤틀어진 성격들은 그것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그래서 <치즈 인 더 트랩>은 기묘한 대결구도를 갖는다. 멜로와 현실이 대결하는 것만 같은 그 구도. 시청자들이 원하는 판타지와 그걸 거스르는 현실의 살벌함의 대결. 물론 모두가 행복해지는 선택을 하기를 시청자들은 바라지만 <치즈 인 더 트랩>은 그걸 쉽게 내주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물론 덫은 바깥으로부터 생겨난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건 그로 인해 각자의 내면에 생겨난 덫이고, 그것을 넘어서야 비로소 타인과의 온당한 관계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 과연 이들은 자신들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