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주말극이 가족을 그리는 방식, 소통과 희생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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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극이 가족을 그리는 방식, 소통과 희생

D.H.Jung 2007. 10. 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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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전성시대’의 웃음과 ‘황금신부’의 눈물

주말 저녁 TV 속의 가족들은 계층 간의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며느리 전성시대’는 장충동 족발집 아들 이복수(김지훈)와 프랑스 식당 베네치아의 딸 조미진(이수경)의 결혼을 다루면서 그 서로 다른 계층의 부딪침을 다양한 각으로 그려낸다. ‘황금신부’는 국내굴지의 식품회사, 웰빙푸드의 사장인 김성일(임채무)과, 영세한 식품업체인 소망식품의 아들 강준우(송창의)와 결혼하고 베트남에서 아버지를 찾아온 진주(이영아)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계층의 갈등을 잡아낸다.

서로 다른 배경의 가족이 결혼이라는 틀 속에서 부딪치는 것이지만 ‘며느리 전성시대’와 ‘황금신부’는 그걸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상이하다. ‘며느리 전성시대’가 다분히 시트콤적인 방식으로 코믹하게 이질적인 가족의 결합을 그리고 있다면, ‘황금신부’는 좀더 전통적인 대결 방식으로 계층 간의 갈등을 그린다. 전자의 코드가 웃음이라면 후자의 코드는 눈물이다. 전자의 방식이 로맨틱 코미디의 가족드라마로의 변용을 쓰고 있다면, 후자의 방식은 전통적인 신파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며느리 전성시대’, 빈부가 아닌 사고방식의 차이
‘며느리 전성시대’의 장충동 족발집과 프랑스 식당 베네치아는 드라마 속에서 가치관의 차이로서 부딪친다. 결혼이라는 틀을 통해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긴장은 전통적인 사고 방식과 현대적인 사고 방식의 차이에 의한 것이지 단순한 빈부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온 환경과 방식이 상이한 두 가족의 부딪침이 보다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지 않는 것은 의도적으로 과장된 캐릭터들이 주는 발랄함 때문이지만 그 기저에는 보다 근본적인 빈부격차의 문제로까지 확대되지 않는 갈등 양상 때문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특이하게도 조미진과 이복수의 코믹한 결혼이야기 옆에 보다 심각한 차수현(송선미)의 결혼문제를 끼워 넣는다. 주말드라마에 있어서 불륜코드까지를 끼워 넣는 건 작가의 다양한 시청층을 잡기 위한 안전한 선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좀더 납득할 수 있는 이유는 확연한 대비효과를 주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시어머니 이명희(김혜옥)가 “추석 상에는 가격흥정 하는 것조차 예가 아니다”라면서 종종 부를 과시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것은 같은 상류사회에서 자라온 며느리, 차수현이 빈부의 차이를 대하는 방식과 다르다. 차수현이 서민적인 김기하(이종원)의 틈입을 허락하는 건, 빈부 차이가 존재하면서도 거기에 대한 특권의식이 별로 없는 요즘 세대의 모습을 반영한다.

작가가 이 드라마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고방식의 차이이며, 그것은 역지사지하는 상황 속에서 넘어설 수 있는 계층 간의 다름일 뿐라는 것이다. 그것을 넘지 못하는 것은 이명희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지듯 빈부격차를 특권의식과 신분의 차이로 이해하는 구시대적인 가치관 때문이다. 앞으로 조미진의 오빠인 조인우(이필모)와 엮어지게 될 이복수의 동생 이복남(서영희)의 결혼이야기는 현재의 상황을 뒤집어보는 계기를 주게 될 것이다. 이것은 또한 조미진이라는 상큼 발랄한 캐릭터를 며느리로 얻게되면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되는 서미순(윤여정)이 양자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과도 연결된다. 이것이 역지사지의 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가 가족드라마의 전성시대를 예고하는 재미의 이유다.

전통적인 대결의 방식, ‘황금신부’
반면 ‘황금신부’가 그리는 대결의 양상은 심각하다. 그것은 전통적인 드라마들이 보여주는 빈부의 차이, 신분의 차이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베트남 신부라는 사회적인 코드를 가지면서도 사회극이 아닌 가족드라마가 되는 이유는 라이따이한 설정의 활용이 전통적인 가족드라마의 틀 안에서 효용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금신부’는 초반부에 베트남 신부라는 설정을 활용해 순애보와 신파라는 전통적인 드라마 코드를 한껏 활용한 바 있다. 시골집 처자를 서울로 상경시킨다 하더라도 지금 시대라면 용인되기 어려운 이 코드들을 끄집어내기 위해 드라마는 베트남에서 신부를 데려온다.

공황장애를 겪는 강준우를 지극 정성으로 사랑하는 진주의 모습은 지금 현실에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50대 이상의 전통적인 드라마 시청층에게는 여전히 통용되는 향수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베트남 신부가 타국에 시집와 병 수발을 하는 결혼생활 속에서 베트남이라는 이문화에 대한 접근은 배제된다. 빈부라는 틀 안에서 이해가 아닌 수용의 차원으로 진주라는 캐릭터가 용인될 수 있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베트남 신부에 대한 우리네 편견이 투영된 결과다.

후반부에 와서 베트남 신부라는 코드는 출생의 비밀이라는 신파의 코드로 활용된다. 여기에도 빈부 격차는 그 기저에서 힘을 발휘한다. 강준우를 공황장애로 밀어 넣은 옥지영(최여진)과 대결양상을 갖고 떡 기술을 배우려는 진주의 이야기는 출생의 비밀이 겹쳐지면서 전통적인 빈부의 코드를 끌어낸다. 이 드라마는 이처럼 이해하고 소통하는 가족을 다룬다기보다는 용서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가족이라도 포용하고 용서를 구하면 본래의 가족으로 돌아갈 수 있다(이것은 예측이지만)는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가치관으로의 회귀를 그려낸다.

파편화된 가족들이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가족은 어떤 식으로든 화두가 되지만 그것을 드라마가 그리는 방식은 이다지도 다르다. 그것은 이해와 소통을 향한 진화의 방식이 되기도 하고 그저 지지고 볶더라도 한 사람의 희생과 용서를 통해 유지되던 과거적 가족 형태로의 회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희생과 소통, 이 두 코드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가족들이 가진 과거적 가치와 현대적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