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국수의 신', 자극이 이렇게 센데 왜 반응은 미지근할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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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의 신', 자극이 이렇게 센데 왜 반응은 미지근할까

D.H.Jung 2016. 5. 2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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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의 신>, 고구마는 가득한데 사이다는 언제쯤?

 

KBS <국수의 신>은 한 마디로 극성이 세다. 인물마다 자신의 욕망이 뚜렷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부딪침이 많다. 갈등은 도처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사람은 쉽게 죽고, 폭력은 도처에서 벌어진다. 지상파 드라마지만 심지어 성폭력이 등장하기도 하고, 성적 유혹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마스터 국수의 신(사진출처:KBS)'

1,2회에 김길도(조재현)라는 악마의 탄생을 촘촘히 그려내면서 네 사람이 그의 손에 죽고 한 명은 식물인간이 된다. 그런데 그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은 아버지고 다른 한 사람은 장인이며 무명의 부모는 아이의 눈앞에서 불타 죽었다. 이 정도로 세다. 목적을 위해 존속살인은 물론이고 청부, 아이도 마다않는 인간이다.

 

만일 이 드라마가 연출을 세련되게 만들지 않았다면 단박에 막장의 비난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 드라마는 이 정도의 자극을 갖고도 막장 논란이 안 나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연출에 공을 들였다. 어쨌든 이렇게 강력하게 악마 김길도를 세운 덕에 이 드라마는 복수극의 명분을 얻었다.

 

고아원에 들어간 무명이 친구인 태하(이상엽)와 재영(고길용)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 여경(정유미)을 만나는 건 이 복수극을 위한 사전포석이다. 이들은 함께 훗날 복수극으로 도와주거나 대결하게 되는 운명을 갖게 될 인물들이다. 이들이 함께 힘을 합쳐 김길도와 대결하는 건 기대감을 자아내게 하는 구도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밝혀진 바대로 여경의 어머니를 죽인 자는 태하의 아버지다. 태하는 이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김길도는 그런 태하에게 부하가 될 것을 권유했다.

 

복수의 대상인 김길도가 장인인 고대천을 식물인간 만들고 서울 강남에 짓는 궁락원은 무명과 그 친구들이 부숴나갈 악마의 소굴 같은 곳이다. 무명이는 어떻게든 궁락원으로 들어가 안으로부터 그 소굴을 무너뜨려 김길도에게 복수하려 한다. 들어가는 과정이나 그 속에서 복수하는 과정은 결국 국수 만드는 비법 대결 같은 틀로 이뤄지게 될 것이다.

 

사실 이 정도면 이야기가 촘촘하고 전개도 빠르며 극적인 상황들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왜 시청률은 응답하지 않는 걸까. 화제성도 그다지 높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이 드라마를 보면서도 느껴지는 이상함이다. 인물들은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정작 보는 마음은 무덤덤하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그 첫 번째는 아무래도 이런 식의 복수극과 음식 소재의 대결 이야기 같은 것들이 어디서 많이 봤던 기시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드라마 시작부터 나왔듯 <국수의 신><제빵왕 김탁구>가 만들어낸 음식 복수극과의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드라마가 지금까지 너무 게임처럼 흘러왔다는 점이다. 이야기는 아귀가 맞고 사건은 빠른 속도로 이어지지만 인물들이 느끼는 아픔 같은 감정들이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는 건 연출이 이야기 전개는 세련되게 하고 있지만 인물들의 감정을 거기에 잘 얹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복수심은 알겠지만 다양한 감정들은 잘 묻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사건은 실감이 느껴지기보다는 게임을 하듯 일정한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또한 연기가 몰입이 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애초에 만화 원작이 갖고 있는 그 만화적인 느낌을 드라마로 가져오면서 좀 더 현실성을 바탕에 깔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무명은 그 당한 일들을 떠올려보면 쳐다보는 것조차 동정심을 유발할 정도로 강렬한 느낌을 줘야 하지만 상대적으로 너무 차분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것도 보다 본격적인 복수극을 위한 하나의 포석일 수 있다. 실제로 이제 <국수의 신>은 무명이 궁락원에 들어가고 여경이 검사가 되어 사건을 파헤치는 등 본격적인 복수극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과정이 너무 길었다는 느낌이 짙다.

 

문제가 무엇이든 드라마에 현실적인 느낌을 좀 더 실어내지 못한다면 제 아무리 사람을 몇 명씩 죽인다고 해도 시원찮은 반응을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 자극적인 장면보다 더 강력한 건 그 사람의 내면에 대한 깊은 공감이 아닐까. 이 불쌍한 청춘들이 그들을 짓누르는 어른들의 세계를 철저히 부숴버리는 그런 사이다는 언제쯤 등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