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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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알' 강남역 살인사건, 왜 실험까지 했을까

D.H.Jung 2016. 6. 6.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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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알>, 강남역 살인사건을 검거된 미제사건으로 부르는 까닭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심층보도하면서 길거리나 심지어 집안으로까지 들어와 성추행과 폭력을 당한 네 명의 사례를 인터뷰했다. 얼굴이 흐릿하게 처리된 채 흘러나온 그 사례 인터뷰에 의외로 두 명은 그 피해자가 남성이었다. 길거리에서 여자 셋에게 성추행을 당한 남성이 한 명이었고, 화장실까지 도망쳤지만 그 안까지 따라온 여자에게 당한 남성이 또 한 명이었다.

 

'그것이 알고싶다(사진출처:SBS)'

하지만 방송은 곧바로 이것이 일종의 실험방송이라는 걸 밝혔다. 즉 그들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들의 사례를 남성인 것처럼 연출해서 보여준 것이라는 것. 그리고 MC인 김상중이 물었다. 그들이 남성이라고 내보낸 방송에 시청자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냐고. 그것이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아니면 그럴 법 하다고 여겼는지. 아마도 대부분의 남성 시청자들은 그 방송내용을 보며 남성의 피해사례가 낯설게 다가왔을 것이다. 방송은 이 실험을 통해 남성들은 체감하지 못하지만 여성들은 일상적으로 느끼는 공포를 이해시키려 했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또 한 여성이 하루 종일 길거리를 다니는 장면을 실험카메라로 찍어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자 충격적인 장면들이 포착되었다. 흘끔흘끔 쳐다보는 남성들은 다반사였고 밤이 되자 다가와 작업을 거는 남자들, 심지어 손을 잡거나 어깨에 손을 얹는 스킨십을 하는 남자도 있었다. 여성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공포감은 남성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이처럼 실험까지 해가며 보여주려 한 것은 여성들이 느끼는 일상의 공포를 남성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함이었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남겼다. 그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남성의 묻지마 살인으로 치부하기에는 그가 하필 여성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이 그간 수면 아래 있던 여성들의 억압된 감정들을 폭발시켰다. ‘여성 혐오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그러자 남성 혐오라는 말도 흘러나왔다. 사안은 이로써 마치 여성과 남성이 대립하는 구도로 흘러갔다.

 

하지만 <그것이 알고싶다>가 심층취재를 통해 찾아낸 건 혐오가 아니라 공포라는 단어였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밝힌 것처럼 혐오공포는 그 의미 자체가 다르다. ‘혐오가 가해자의 공격적인 모습을 그려낸다면, ‘공포는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을 보여준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강남역 살인사건의 참극을 혐오의 대결이 아니라 공포의 이해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공포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 문제를 사회적인 사안으로 끄집어내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거나, 잘못된 편견 같은 걸 문화적으로 교육을 통해서 남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바꿔나갈 수 있는 첫걸음이 된다. 결국 이 사안이 여성들만의 싸움으로 바꿔지기 어려운 일이고 남성들이 함께 동참해야 바뀔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혐오의 관점으로 남성, 여성으로 나뉘어 대결하는 건 해결점을 찾기가 어렵고 또한 정부가 나서서 책임지고 해야 할 치안 같은 사회 시스템적인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도 있다. 남성들이 잠재적 가해자가 아닌 것처럼, 여성들도 잠재적 피해자로 치부돼서는 안 된다. 따라서 여성들이 느끼는 사회적 공포를 남성들도 동참해 함께 이해해나가야 하고 암묵적으로 잘못된 남성들의 편견이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여성들에게는 크디 큰 공포가 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실험까지 강행하며 이해시키려 하고 강남역 살인사건이 범인은 검거되었지만 여전히 미제사건이라고 말하는 건 그래서다. 결국 이 사건은 여성들에게 일상화되어버린 이 사회적 공포가 사라져야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또 다른 사건은 언제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가는 첫 걸음은 여성들의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