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개그맨들의 무한경쟁 그리고 눈물과 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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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들의 무한경쟁 그리고 눈물과 땀

D.H.Jung 2007. 11. 1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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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는 웃기면서도 슬프다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웃음을 주어야 하는 코너에서 개그맨 김경민이 눈물을 흘린다. 항상 요상한 동물모양의 옷차림을 하고는 뒤뚱뒤뚱 걸어가는 모습으로 기억되어 있던 그. 대중들에 잊혀져 생활고에 힘겹게 살면서도 웃고 있어야 그 생계를 이을 수 있었던 그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를 보던 다른 개그맨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나이도 잊고 후배개그맨들에게 면박을 받아가며 웃음을 주어야 생계를 해나갈 수 있다는 그 개그맨의 현실은 단지 김경민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혹 그걸 보다가 함께 울컥한 시청자분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 개그맨의 눈물에서 무한경쟁 속에 살아가는 우리네 눈물과 땀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민들 삶이 갈수록 힘들어져 웃음을 찾기가 힘들어져서일까. 아니면 개그맨이란 직업 자체가 우리네 서민의 삶을 고스란히 대변하기 때문일까. 개그맨들은 언제부터인가부터 재치 있는 입만 갖고는 먹고살기 힘든 무한경쟁 속에 떨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주었던 안정적인 프로그램에서 쫓겨나 무대 위에 올려지거나 거리로 나서고, 말도 안 되는 불가능한 도전을 해야하며, 야생에서 노숙에 가까운 밤을 지새야 한다. 때론 묘기 같은 몸 동작을 하거나 자신의 몸을 연실 때려야 하며, 땅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먹어야 하고 사람들 앞에서 몸이든 사생활이든 발가벗겨져야 한다.

짜놓고 하는 개그에 더 이상 웃음을 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개그맨들은 진짜 자신의 모습을 끄집어내려는 리얼리티쇼라는 틀과 마주해야 한다. 리얼리티쇼는 수많은 카메라를 동원해 집요하게 개그맨들을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숨기려는 얼굴 이면의 맨 얼굴을 잡아내려 한다. 굴욕을 당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짓다가 한순간 무너지는 얼굴을 보였을 때,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진지하게 무언가를 해나가겠다는 결연한 얼굴을 보여주다 그것이 순식간에 깨졌을 때 웃음은 터져 나온다. 리얼리티쇼의 카메라는 그걸 잘 알고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전성시대가 되면서 개그맨은 일상에서 승부해야 한다. 실제 개그맨이라는 선후배 관계가 확실한 직업 속에서 일상적인 라인의 삶은 이제 무대 위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물론 거기에는 설정이 있겠지만 적어도 그 설정은 실제 삶을 바탕으로 생겨난 것이 분명하다. ‘라인업’이 생계형 리얼 버라이어티를 내세우는 것은 그것이 여타의 리얼리티쇼와 다르게 실제 일상과 살을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김경민은 바로 이 ‘라인업’이 보여주려는 개그의 진짜 맨 얼굴인 셈이다.

‘라인업’이 저 독한 개그맨의 삶 자체를 리얼리티쇼로 끌어들였다면, ‘1박2일’은 문명에 적응하고 있는 개그맨들을 야생에 풀어놓고 그 날 것의 모습을 가감 없이 끌어낸다. 혹한기에 야외에서 밥을 지어먹고 노숙에 가까운 잠을 자야 하는 그들이 그 살벌한 하룻밤을 놓고 단순한 게임으로 그 대상자를 선정하는 모습은 그 장난 같은 게임이 가져올 괴로운 결과에 웃음 짓게 만든다. 그 행동들은 하룻밤의 야생체험이라는 경쾌함을 갖고 있지만 그 계속되는 여정들을 놓고 보면 참 개그맨이라는 직업의 삶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리얼리티쇼가 가진 독한 개그의 세계는 한 때 무한경쟁의 틀 속에서 독하다 여겨졌던 무대개그 프로그램마저 더 독하게 만든다. 몇 초의 대사를 치기 위해 일주일간을 준비했다가 그마저 편집으로 날아가는 그네들의 상황은 그 자체가 생계의 절박함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무대라는 장치로 인해 가려진다. 무대 뒤편에서 어느 날 개그맨들이 소주 몇 병을 놓고 신세한탄을 하다가 누군가 불쑥 던진 한 마디에 울음바다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만 간간이 들려올 뿐이다.

리얼리티쇼는 무대를 거둬냄으로써 그 일상의 울음마저 웃음으로 전이시킨다. 개그맨 김대희가 실제 삭발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되는 그 순간에 웃음이 터지면서도 마음이 뭉클한 것은 그 온몸으로 던지는 개그가 그 무대에서만 머물지 않고 우리네 삶의 한 단면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 실체는 바로 생계다. 웃으면서 웃음을 주려는 그 얼굴의 이면에는 웃겨야 살 수 있다는 생계의 현실에서 흘려야 하는 그들의 눈물과 땀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 눈물과 땀마저 고스란히 보여주는 리얼리티쇼 전성시대에 웃음은 때론 잔인하다. 생계를 건드렸을 때 웃음은 터지지만, 그래서 그 웃음은 때론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