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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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거북이걸음 걷는 '역적', 겉멋 부릴 때가 아니다

D.H.Jung 2017. 3. 2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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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 초반의 속도감은 다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MBC 월화드라마 <역적>은 어느새 반환점을 돌았다. 전체 30부작 중 15부가 지나간 것.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홍길동(윤균상)의 비상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앞부분의 대부분을 아모개(김상중)라는 길동의 아버지의 존재감이 채워 넣었고, 이제 겨우 홍길동이 활빈정의 수장이 되었지만 아직 각성하지 못하고 왕 연산군(김지석)의 뒷배를 봐주는 건달놀음을 하고 있을 뿐이다. 

'역적(사진출처:MBC)'

사실 이런 느림보 전개가 되리라고는 <역적>의 초반만 해도 예상하기가 어려웠다. 그만큼 길동 아버지 아모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 전개가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참봉을 죽이고 각성해 노비 처지에서 벗어나 익화리에서 터전을 만들었지만, 충원군(김정태)을 뒤에 업고 복수하는 참봉부인(서이숙)에 의해 익화리 사람들과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그 상황까지가 숨 가쁘게 진행된 바 있다. 

그런데 길동이 충원군에게 복수를 하고 나서 내관 김자원(박수영)을 매개로 연산과 관계를 맺는 이야기는 너무 느슨하게 느껴졌다. 이것은 아모개의 죽음을 지나치게 긴 분량으로 잡아넣은 지난 회에서부터 느껴졌던 부분이다. 물론 아모개라는 캐릭터의 존재감이 그만큼 컸다는 걸 방증하는 일이겠지만 드라마가 앞으로 나가지 못함으로써 긴장감이 흐트러진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연산이 금주령을 내리고 그걸 이용해 돈을 모아 다시 연산에게 바치는 그 연결고리에서 그나마 긴장감을 유지하게 한 유일한 인물은 김자원이다. 한편으로는 홍길동을 위험인물로 바라보면서도 또한 이용하려는 듯 보이는 이 속을 알 수 없는 내관의 태도가 아니었다면 이 한 회 분량의 이야기는 너무 심심할 수 있었다. 어째서 초반 그 좋은 설정과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전개를 발견하기 쉽지 않은 걸까.

길동을 중심으로 활빈정 사람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건 이 드라마가 자칫 너무 분위기만 잡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순수노비혈통의 애기장수라는 홍길동에 대한 좋은 재해석을 담아 놓고도 어째서 이런 외관에만 집중하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드라마의 힘은 긴장감을 놓지 않는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에서 나온다. <역적>이 그토록 좋은 캐릭터와 재해석을 갖고도 시청률이 오르기는커녕 갈수록 빠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도 입소문으로 12.5%(닐슨 코리아)까지 올랐던 시청률은 이제 9,7%까지 주저앉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홍길동은 도대체 언제쯤 각성해 연산군과 대적해나갈까. 물론 그걸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이 시청자들로서는 너무나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겉멋을 부릴 일이 아니다. 시청자들은 쭉쭉 뻗어나가는 홍길동의 활약을 기대하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