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여성의 일까지 사랑한 왕, 이산 본문

옛글들/명랑TV

여성의 일까지 사랑한 왕, 이산

D.H.Jung 2007. 11. 28.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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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알파걸을 밀어주는 알파보이들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최한결(공유)은 알파보이다. 재벌집 아들에, 다 허물어져 가는 왕자다방을 커피 프린스로 둔갑시킬 만큼 능력 있고, 잘 생긴데다가 다정다감하기까지 하다. 그런 알파보이가 소녀가장으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일을 할 정도로 가난한 데다, 선머슴처럼 생긴 외모에 털털하기 그지없는 성격으로 남자로 오인 받는 고은찬(윤은혜)을 사랑한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알파보이가 고은찬이란 여자의 숨은 재능을 키워내 알파걸이 되게 적극 밀어준다는 점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인기요인 중 한몫을 차지한 것은 바로 이 일하는 여성들이 갖는 환타지이다. 많이 변했다고는 하나 외국유학의 시간동안 묵묵히 기다리며 그녀의 성공을 빌어주는 남자는 아직까지는 드라마 속에서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은찬은 물론이고 한유주(채정안)-최한성(이선균) 커플을 통해서도 보여진다. 이미 둘 다 알파걸, 알파보이인 이 둘은 일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결국 드라마가 보여준 것은 그 둘 다를 가지는 워킹우먼들의 환타지이다.

이런 알파걸을 밀어주는 알파보이는 현대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극 속으로 들어온 알파보이 이산(이서진)은 장차 알파걸이 될 성송연(한지민)을 적극 밀어준다. 그는 성송연에게 “왜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살려 화원이 되려 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조선시대라는 역사적 시점에 그것도 왕이라는 신분까지 감안한다면 이 제안은 실로 파격적이고 충격적이라 할만하다. 지금 시대에도 하기 어려운 것을 남녀차별이 일상화되었던 조선시대에 한 셈이니 말이다.

그것은 단지 사탕발림의 말만이 아니다. 이산은 보다 적극적으로 이 일에 뛰어든다. 당시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기회, 즉 다모가 화원이 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단지 성송연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당대 모든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밀어주기 위한 본보기로서 이 일을 벌인 이산은 어찌 보면 진정한 현대적 시각을 갖춘 남성이라 할만하다. 반면 대부분의 현대남성들이 그러하듯이 편견에 가득한 남정네들은 성송연과의 경합에서 자신들이 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저편에서 성송연의 사회진출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미소짓는 남자, 그녀의 알파보이 이산이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여성의 사회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드라마 속 남성들에게 쏟아지는 찬사는 당연하다. 그만큼 현실의 남성들이 가진 편견과 싸우면서 당당히 사회 속에 제 자리를 찾아가는 알파걸들이 점차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또 다른 양태로도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남성들이 제시하는 것이 물질적인 부나 지위가 아니라 그녀들이 진정으로 잘 하고, 또 하고싶어하는 일을 뒤에서 묵묵히 밀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대는 남성이 일방적으로 여성을 신데렐라로 만드는 이야기가 여성들에게 더 이상 매력이 없어질 정도의 세상이 되었다. 현대여성들은 종속적인 신분상승이 아닌 자아성취를 지지해주는 남성과의 동등한 만남을 원한다. 그것이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사극 속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현실여성들의 환타지가 스며든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의 변화는 또한 남성 캐릭터들의 변화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현대여성들은 자신을 알파걸로 알아주고 지지해주는 알파보이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