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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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황금신부’, ‘태사기’만큼 사랑 받는 이유

D.H.Jung 2007. 12. 9.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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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극과 극, ‘황금신부’와 ‘태사기’

AGB 닐슨의 지난주 주간시청률 조사 결과에 따르면 ‘태왕사신기’의 시청률은 29.8%로 전체 4위. ‘황금신부’는 24.1%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드라마의 완성도나 규모 등을 두고 봤을 때, 거의 극과 극에 서 있는 이 두 드라마의 시청률이 극과 극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건 의외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완성도가 못 미치는 드라마라고 해서 시청률이 안 나온다는 말은 적어도 ‘황금신부’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또한 그 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완성도나 규모에 있어 거의 극점에 달해있던 ‘태왕사신기’가 이 정도의 시청률에 머물렀다는 것도 언뜻 이해가 어렵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일까.

‘태왕사신기’가 RPG라면 ‘황금신부’은 대전게임
‘태왕사신기’는 게임으로 친다면 주인공이 아이템을 얻어가며 성장하는 RPG 게임에 해당될 것이다. 그런데 ‘황금신부’도 ‘태왕사신기’처럼 게임의 대전모드 형식을 취하고 있다면 이상하게 생각될까. 그러나 ‘황금신부’는 서로 얽히고 설킨 두 집안 사람들이 끝없이 대결하는 드라마로 게임으로 치면 대전게임을 닮았다.

먼저 상류층과 중산층으로 대변되는 두 집안의 환경 자체가 계층 간의 대결구도를 만든다. 준우(송창의)네는 영세한 식품업체인 소망식품을 가족들끼리 꾸려나가는 반면, 영민(송종호)네는 국내 굴지의 식품회사인 웰빙푸드를 경영한다. 전통의 떡을 생산하는 영세업체와 프랜차이즈 음식을 유통하는 대기업은 전통적 가치와 현재의 세태를 병치시킨다.

이런 양측의 팽팽한 긴장감은 그 가족들 간의 계속 연결되는 악연으로 대전 모드로 전환된다. 준우의 어머니인 한숙(김미숙)은 옛친구이자 영민의 어머니인 옥경(견미리)에게 성일(임채무)을 빼앗기고 이 악연은 대물림된다. 한숙의 아들 준우가 사랑하던 옥지영(최여진)이 옥경의 아들 영민과 결혼하면서 준우는 그 상처에 공황장애까지 겪게 된다. 물론 공황장애는 베트남 신부인 진주(이영아)의 극진한 사랑으로 극복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진주가 찾으려는 친아버지인 성일은 진주가 딸임을 부정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한숙의 딸인 세미(한여운)는 옥경의 아들인 영수(김희철)과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물론 이런 관계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한 번의 우연은 이해될 수도 있지만 두 번 이상 계속되는 우연은 그것을 의도로 보게 만든다. 그러니 ‘황금신부’의 대결구도는 드라마적으로 완결된 구조 속에서 탄생된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의도된 것이다. 따라서 ‘황금신부’를 리얼리티의 잣대로 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드라마를 권선징악과 죄와 벌의 당위의 구조로 만든다. 그 안의 인물들은 리얼한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당위를 향해가는 이 장기게임 같은 드라마의 재미있는 말로서 기능한다.

이렇게 보면 ‘황금신부’의 구조는 게임의 스테이지를 닮아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첫 번째 스테이지가 진주를 통해 준우가 공황장애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스테이지는 다시 회사를 나가게된 준우가 진주와 얽혀 겪게되는 사회적 편견을 헤치고 나가는 것이며, 세 번째 스테이지는 준우의 동생인 세미와 시동생인 영수의 결혼을 반대하는 옥지영의 이야기가 된다. 이런 스테이지는 끝없이 계속된다. 하다 못해 옥지영의 과거가 밝혀지는 과정도 하나의 스테이지이며, 그녀가 진주와 전통떡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떡 배틀’을 벌이는 것도 또 하나의 스테이지다. 스테이지의 대미는 결국 성일이 진주의 친아버지임이 밝혀지는 것이 될 것이다.

단순한 스토리는 때론 강점이 된다
또한 ‘태왕사신기’와 ‘황금신부’는 스토리에 있어서도 극과 극을 달린다. ‘태왕사신기’의 스토리는 시청자들에게 복잡한 게 사실이다. 캐릭터와 스토리들이 유기적으로 짜여진 구조를 갖고 있어 한두 회를 놓치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반면 ‘황금신부’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두 집안의 대결구도 정도만 알고 있으면 중간에 몇 회 빼먹더라도 다시 보기만 하면 금세 이해가 가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게다가 이 대결구도라는 것은 사실상 우리네 멜로 드라마들이 가졌던 대부분의 관습적 설정들을 다 모아놓은 것들이다.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저 남자가 버린 딸이래”, “저 여자가 버린 남자래” 하는 말 하나면 쉽게 이해가 된다. 단순한 이야기 설정은 누구나 쉽게 그 게임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태왕사신기’같은 거의 처음과 마지막의 조각퍼즐이 딱 들어맞는 듯한 완성도 높은 스토리가 가질 수 없는 단순함의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황금신부’가 이런 역설적인 장점(떨어지는 완성도와 단순한 스토리가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는)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방영시간이 주중이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주중 드라마의 기대치는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주말 드라마의 기대치는 낮다. 요즘처럼 주5일 근무제에 금요일에 집을 비우는 가족들이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밀도 높은 연속성을 가진 드라마는 오히려 시청자의 접근을 어렵게 한다.

‘황금신부’의 시청률 상승은 리얼리티보다는 시청자들이 익숙한 소재로 그 드라마가 전하는 메시지의 당위성을 게임이란 방식으로 풀어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요컨대 ‘황금신부’는 시청자의 예측을 깨는 스토리전개의 놀라움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니라, 시청자가 원하는 스토리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것이 깊은 공감을 주었다면 그것은 드라마의 완성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드라마가 깨려는 황금만능주의와 계층 간의 편견들이 실제 현실 사회에서 그만큼 두텁다는 반증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태왕사신기’처럼 뛰어나거나 완성도가 높지 않고 조금 부족해도, 또 느슨한 스토리라도 시청자들이 준우와 진주의 사랑을 지켜보고, 지켜주고 싶은 이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