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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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태왕사신기’가 남긴 대작 후유증

D.H.Jung 2007. 12. 1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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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논란에도 불구, 대마불패 신화 건드리나

‘태왕사신기’에 대한 논란은 도대체 어디까지 갈까. 430억 원이 투여된 덩치 큰 대작만큼이나 논란도 끝이 없다. 지난 6월 네 번째로 방송연기를 발표했을 때, MBC의 반응은 의외였다. 아무리 외주제작사의 몸피가 커졌다고는 하지만 MBC는 거기에 대해 뭐라 한 마디 토를 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MBC가 그렇게 여유 있는 상황이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급작스런 ‘태왕사신기’의 연기로 비어있는 월화의 밤을 채우기 위해 8부작 ‘신현모양처’가 급조되었지만 당연히(?) 반응은 없었고, ‘태왕사신기’와 겹쳐 SBS에서 방영하게 된 ‘쩐의 전쟁’은 당시 수목의 밤을 뜨겁게 달구며 MBC를 안타깝게 했다. 한편 화려한(?) 캐스팅과 소재만 난무하고 제대로 된 스토리가 부재했던 주말드라마 ‘에어시티’는 60억이 투여되었지만 시청률 10% 내외를 오가는 저조한 상황이었다.

이 정도의 상황에서 MBC가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뚜껑을 연 작품이 어느 정도의 질을 담보했다는 것. 송지나 작가의 대본은 짜임새가 있었고, 김종학 PD의 연출은 명불허전이었으며, 배용준은 그만이 가질 수 있는 아우라로 작품 전체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잡음은 생겼다. 완성도 높은 사전제작을 주창했던 ‘태왕사신기’는 결국 시간에 쫓기는 ‘생방송 편집’을 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테이프 입고가 늦어져 20분이나 뉴스를 연장 편성하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편성제작부문 김정규 부위원장은 ‘태왕사신기의 오만, 그리고 MBC의 굴욕’이라는 제목의 보고문을 통해서 “지난달 중순에는 제작시간 부족을 이유로 23회 방송이 어려우니 마지막회로 예정돼 있던 ‘태왕사신기 스페셜편’을 방송하겠다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일련의 사건들을 두고 보면 ‘태왕사신기’는 방송사의 고유권한인 편성권마저 뒤흔들 정도의 힘을 발휘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작품에 대한 욕심에서 빚어진 결과일 수도 있다. 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다 보니 나타난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부작용이란 결국 우리네 드라마의 고질병인 시간에 쫓기는 방송제작 행태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태왕사신기’의 잇단 논란들은 그 고질병이 대작이라는 힘을 등에 업고 이제는 편성까지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작품 자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든 계속되는 연기자들의 부상과 끝없이 쫓기는 시간과의 전쟁 속에서 ‘태왕사신기’는 그 마지막회의 화룡점정을 하지 못했다. 시청자들의 “안 본 걸로 할 테니 다시 찍어달라”는 요구는 대작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컸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대작드라마를 표방한 ‘태왕사신기’의 마지막으로는 너무 밋밋했던 데서 나온 비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 불거져 나온 것은 ‘대작’이라는 거창한 용어를 만든 430억 원이란 돈의 행방이다. MBC 노조측은 430억 원 중 배용준 개인에게 지급된 금액이 60억 원에 달한다고 하면서 대작이란 말은 허명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작사와 배용준 측은 이것을 극구 부인하고 나서고 있어 그 진위를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런 논란은 대작드라마가 남긴 깊은 후유증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그나마 배우들의 거품 개런티에 대한 자정의 목소리가 자리를 잡아가는 요즘, 이것이 ‘태왕사신기’의 대작 마케팅을 타고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 때문이다. 과정이야 어찌됐건 방송사의 편성까지 움직일 정도의 성공을 거둔 ‘태왕사신기’가 드라마 제작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잡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대마불사의 잘못된 신화가 드라마의 대작화를 부추기지는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 때문이다.

돈들이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대작드라마’의 환상일 뿐이다. 시청자들은 볼거리보다 스토리에 더 열광하며 그렇기에 드라마가 집중해야 할 것은, 규모보다는 참신한 연출과 다양한 소재발굴, 작가군의 양성 그리고 새로운 제작시스템의 도입 등을 통한 드라마의 완성도이다. MBC가 꿈꾸던 ‘태왕사신기’라는 쥬신의 별은 저 드라마 속의 담덕처럼 실제로 반짝반짝 빛났던 것이 사실이나, 그 별의 반짝임만큼 그림자도 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