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원스’, 그들의 음악은 가난하지 않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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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그들의 음악은 가난하지 않다

D.H.Jung 2007. 12. 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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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보는 영화 ‘원스’

“때론 ‘음악’이 ‘말’보다 더 큰 감동을 전할 수 있다.”
지난 9월 10개관으로 개봉했던 ‘원스’는 13주차가 되면서 20개관으로 확대 개봉되었고 20만 명의 흥행에 육박하고 있다. 제작비가 1억4천만 원에 불과한 독립영화로 보면 이 영화의 흥행은, 더 많은 물량이 투여되는 기획영화들이 거둔 약 500만 명의 흥행에 버금가는 성공을 이룬 셈이다. 그 성공의 이유는 바로 존 카니 감독의 말과 다르지 않다. ‘원스’는 음악이 우리 인생에 주는 최고의 선물들을, 그 순간들을 86분 짜리 영상에 담아 전하는 음악에 관한, 음악에 의한, 음악의 영화다.

음악의 기적1. 노래의 진심이 다른 마음에 닿는 순간
사람의 마음을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잘 아는 사람도 아닌 불특정 다수를 향해 전하는 마음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 그 마음이 노래를 통해 전달되는 그 순간은 음악이 기적을 만드는 지점이다. ‘원스’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길거리에서 노래하는 남자는 자신의 상처 입은 마음을 절규하듯 노래한다. 노래란 본디 상처를 어루만지는 자기 위안과 같은 것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그 노래는 누군가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위한 것이 된다. 그런데 혼자 마음을 다독이던 그 순간, 그 마음의 노래를 알아듣는 사람이 나타난다. 이것은 음악이 우리에게 전하는 기적적인 순간이면서 우리네 인생에서 누구나 맞닥뜨리게 되는 사랑의 메타포이기도 하다.(OST. Say it to Me Now)

음악의 기적2. 음악이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순간
그렇게 만난 그들은 한 악기점에서 피아노와 기타 선율 속에 노래를 담아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길거리에서 기타 하나 들고 절규하는 가난한 남자와, 피아노가 없어 맘씨 좋은 악기점에 잠깐 들러 피아노로 마음을 위안하던 가난한 여자는 아무런 설명 없이도 음악만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고단한 삶 속에서 그 고단함을 버티게 해주는 것이 다름 아닌 음악이며 악기라는 공감대 때문이다. 가사의 내용을 음미하지 않아도 서로의 목소리와 악기의 선율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영화 속 장면은 감동적이다. 그 노래와 연주가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기 때문이다. 이 기적적인 순간은 음악이 아니라면 영화 한 편을 통해서도 설명되기 어려운 장면이 아닐까. 눈이 아닌 귀로 보는 영화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OST. Falling slowly)

음악의 기적3. 음악으로 마음을 전하다
남자가 여자에게 자신이 만든 곡을 주고 여자가 거기에 가사를 붙이는 이 시퀀스는 이 영화의 백미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곡을 내준다는 것은 어쩌면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 되지만, 영화 속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곡을 건넨다. 자신은 도저히 가사를 붙일 수 없을 것 같다며. 하루가 끝나고 다들 잠든 시간에 어두운 불빛에 의지해, 남자가 주고 간 CD플레이어를 들으며 여자는 곡에 가사를 붙인다. 그리고 CD플레이어에 소모된 건전지를 다시 사기 위해 딸의 소중한 저금통을 털고 파자마 차림으로 가게를 찾는 장면은, 그녀의 남편에 대한 마음과 그 마음을 담는 것을 허락한 남자가 주고간 곡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OST. If you want me)

음악의 기적4. 함께 노래하다
남자와 여자가 길거리의 음악가들을 모아 녹음실을 빌려 노래를 CD에 담는 장면은 이제 둘 사이에 흐르는 공감대와 사랑의 노래를 이제 세상을 향해 들려주겠다는 실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시큰둥하던 엔지니어의 귀를 활짝 열게 만들고, 시간이 돈인 녹음실에서의 밤샘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그들의 음악은, 영화 속을 빠져나와 현실에 선 관객들의 마음마저 움직이게 한다. 밤샘 끝에 남자와 여자의 손에 쥐어진 CD는 몇 개에 불과하지만 그 CD에 담겨진 노래는 그들이 함께 노래했던 기적 같은 순간들과 마음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어느 것에도 비교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이로써 그들은 서로 헤어지지만 영원히 음악 속에서 하나가 된다. 이미 마음이 정해졌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언제든 부르면 달려갈 것이라 노래하는 남자처럼. (OST. When Your Mind's Made Up)

현실 속에서 음악이란 때론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어떤 것이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이라도,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라도 찾으면 그 마음을 보듬어주는 우리네 삶의 치유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돈도 아니고, 화려한 영상도 아니며, 놀라운 스토리도 아닌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가난한 자들에게 더욱 공평한 음악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가난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