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라인업’의 웃음보다 값진 땀 본문

옛글들/명랑TV

‘라인업’의 웃음보다 값진 땀

D.H.Jung 2007. 12. 23.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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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으로 간 ‘라인업’, 그 살림의 손길

“야 이거 어떻게 하냐?” “정말 화난다 화나.” SBS ‘라인업’의 ‘서해안을 살리자’편에는 개그맨들의 웃음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침통한 얼굴이었고 바다가 오일천지가 되어버린 안타까운 광경 앞에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웃음을 주는 프로그램에 몇 회 정도 웃음이 없는 게 대수일까. 조금이라도 기름을 제거하고자 온몸으로 뛰어든 그들의 땀은 웃음보다 값진 것이었다.

화면을 가득 메운 기름유출사고로 태안에 밀어닥친 절망감은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왜 분노하게 된 걸까. 그것은 마치 신성한 몸을 더럽힌 파렴치범들의 행위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가해자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피해자들만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있었다. 우리의 어머니 같은 바다는 가해자의 손에 잔인하게 유린되었다. 한동안 생명을 잉태할 수 없을 만큼.

처음 기름유출사고 소식이 나왔을 때는 그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방송은 연일 대선정국에 대한 것으로 가득했다. 누가 몇 프로 차이로 앞서고 있다는 둥, 누가 무슨 발표를 했다는 둥, 그렇고 그런 매일 똑같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도대체 왜 이 심각한 사항에 대해서는 이리도 인색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누군가는 이런 얘기도 했다. 한 몇 일만 치우면 깨끗해진다고.

TV에서 태안의 상황을 그래도 정확하게 짚어준 것은 놀랍게도 뉴스가 아니라 ‘라인업’이라는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이었다. 개그맨들이 등장해 한참 사람들을 웃겨야할 상황에 ‘라인업’은 한 시간 동안 침통한 얼굴의 개그맨들을 보여주었다. 태안의 상황에 넋을 잃은 것은 개그맨들뿐만이 아니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괜찮다고 여겼던 바다가 온통 기름띠였다. 그 후 ‘추적60분’에서 이 상황을 심층적으로 다루었는데 카메라맨들을 향해서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우리 이젠 다 죽게 생겼는데 도대체 나라에선 뭐하는 거냐구!”

한 회의 이벤트로 끝날 줄 알았던 ‘라인업’의 멤버들이 또다시 태안으로 달려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 한 마디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었다. 누군가 쉽게 말한 것처럼 태안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도 꽤 오랜 기간 동안 싸워 나가야할 일이라고. 그러니 도움을 달라고. 개그맨 몇 명이 태안에 내려가서 하루 동안의 일을 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싶지만 ‘라인업’은 그것을 몸소 보여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참담한 실상을 충분히 알려주었다.

그들은 해안가의 자갈에 묻은 기름을 손으로 퍼내고 양동이에 담아 치웠다. 마치 오물을 뒤집어쓴 집을 치우는 주부의 모습처럼 그들은 퍼내고 닦고 치우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살림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늘 묵묵히 누군가 더럽혀 놓은 것을 치우고 닦는 살림. 가만 놔두면 죽게되는 것을 살리는 것. 그 살림의 몸 동작은 몸 개그를 통해 주었던 큰 웃음보다 더 아름답고 값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