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주몽, 이 시대의 영웅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주몽, 이 시대의 영웅

D.H.Jung 2006. 8. 6.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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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의 인물론

영웅이라는 말은 시대와 나라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다. 영웅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신에 도전하는 인물로서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삼국지나 각종 전쟁에서 보여지듯 전쟁지도자나 정복자의 의미를 갖기도 했다. 또한 영웅이 포괄하는 범위는 넓어서 때로는 순교자, 과학자 혹은 예술가가 영웅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시대와 나라에 따라 다양한 의미가 존재하는 것은 당대에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영웅이라는 ‘현실을 뛰어넘는 이상적 존재’에 투영하는 의미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제 영웅이라는 말은 월드컵에 나간 축구선수일 수도 있고, 기술적 발견을 해낸 과학자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심지어 연예인이 되기도 하며, 작게는 가족을 지키는 부모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영웅은 이제 저 멀리에서부터 우리 옆으로 찾아온 것이다.

‘주몽’이라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몽이라는 영웅은(본래 역사적 인물로서의 주몽과 드라마 속 주몽은 다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 시대의 영웅이라 할만하다. 역사적 사료에 보다 충실한 정통사극이 아닌 퓨전사극을 표방한 ‘주몽’은 보다 더 폭넓게 현대인들의 욕망을 사극이라는 그릇 속에 담아 넣었다. 그러자 주몽이라는 역사적 인물은 역사와 민족이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어버리고 현대인들의 욕망을 대변하는 영웅으로서 재탄생되었다. 민족주의 영웅이 될 것 같았던 ‘주몽’은 현대인들의 욕망을 대변하는 인물이 되었다.

드라마는 완성된 영웅에서 시작하지 않고, 소시민이었으나 차츰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에 천착한다. 이것은 현대인들의 영웅관과 상당부분 맞닿아 있다. 과거의 영웅이라면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했지만, 지금은 보다 인간적이고 친근한 영웅을 희구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영웅이 손에 잡히지 않는 존경의 수직적인 대상이었다면, 현대의 영웅은 손에 잡힐 것 같은 그래서 때로는 질투가 나기도 하는 수평적인 대상이다. 드라마는 절묘하게 초기 해모수라는 과거 형태의 전형적 영웅을 등장시켜 안심시킨 다음, 주몽이라는 현대적 영웅을 그 테두리 안에 넣고 조금씩 키워나간다.

카리스마를 걷어내자 주몽은 이제 대화와 타협을 하는 이 시대의 인간경영자가 된다.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 주변을 살피면서 조금씩 주변인물들을 끌어들여 일을 성사시킨다. 주몽의 이런 주도면밀함은 때론 그를 조금 소극적인 인물로 보게 만든다. 차라리 그의 어머니 유화부인이나 그를 돕는 소서노라는 여자 영웅들은 오히려 더 주체적이다. 그럼에도 주몽이 이들을 장악하는 이유는 우위에 있는 인간경영 능력 때문이다.

주몽은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역사적 영웅이 빠질 수 있는 민족주의적 환타지라는 함정을 피해나간다. 나라를 구원하는 영웅은 보기에 속시원할 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이루어낸 것 같은 환타지만 제공할 뿐이다. 드라마의 고구려 열풍이니, 영화 ‘한반도’니 하는 민족주의의 바람이 거센 요즘, 조금은 인간적인 영웅, 주몽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오히려 그 민족주의의 환타지를 깨는 영웅이기 때문이다. <G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