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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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갑질 고구마 세상에 '감빵생활'이 날리는 사이다 한 방

D.H.Jung 2017. 12. 2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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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빵생활’, 감방만 비춰도 갑질 세상이 보이네

본래 영상은 프레임 안의 이야기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고 했던가.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면 이 이야기가 실감난다. 이 드라마의 카메라가 포착하고 있는 건 거의 90% 이상이 감방 안이다. 그러니 어딘가 답답할 법도 하고, 이야기도 한정적일 것 같지만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감방 안에 거의 카메라를 드리우고 있는 드라마가 이토록 다채롭고 세상 바깥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그 비밀은 감방 안에 들어오게 된 인물들에게서 나온다. 저마다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고 그 사연은 그들이 감방에까지 들어오게 됐다는 사실에서 사회적 함의를 갖기 마련이다. 이를 테면 주인공인 제혁(박해수)이 감방에까지 들어오게 된 사연 자체가 그렇다. 정당방위가 과잉방어가 되고 그래서 감방에 들어와 야구 은퇴 선언까지 하게 된 스타 프로야구선수. 겉보기엔 화려해보이지만 그것을 얻어내기 위해 죽을 만큼 열심히 노력해온 그는 ‘꿈을 위해 죽을 만큼의 노력을 요구하는 사회’의 한 면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물론 제혁은 성공한 인물이지만 그렇게 노력을 아무리 해도 성공은커녕 계속 갑질을 당하고 억울하게 감방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다. 고박사(정민성)가 그런 인물이다. 건설회사 재무팀 과장으로 지내다 자신은 저지르지도 않은 배임 횡령죄로 감방에 들어왔다. 그의 가족을 챙겨주겠다는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 문제들을 홀로 책임지게 된 것. 하지만 회사의 갑질은 감방에 들어왔다고 해서 끝나지 않았다. 회사에 문제가 또 터지자 그것마저 고박사가 떠안으라는 편지가 날아온 것. 없는 자는 더 핍박받는 우리 사회의 고구마 현실을 고박사라는 캐릭터는 그대로 보여준다. 

사병을 때려 숨지게 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방에 들어오게 된 유대위(정해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있던 부대에서 백이 있다는 이유로 계급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폭력을 행사해온 오병장은 박일병을 때려죽인 후 부대원들을 협박해 그에게 누명을 씌운 것. 유대위는 군대라는 조직에서조차 권력자의 백이 우선하는 사회의 면면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군대가 저 정도이니 사회는 오죽할까. 고박사는 유대위 같은 인물은 그래서 사회생활이 감방생활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걸 보여준다. 어찌 보면 감방생활이 더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

하지만 제 아무리 현실이 ‘감방생활’이어도 ‘슬기롭게’ 대처해나가는 것으로 이 힘겨움을 버텨낼 수 있다고 말하는 드라마가 바로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다. 자신이 그 정도로 쉬운 인물이었다는 걸 절감한 고박사는 그래서 면회를 온 도부장에게 반격을 가한다. 스스로 회사의 비리를 털어놓게 하고 그 내용을 감청해 오히려 도부장을 협박한 것. 또 유대위의 형 유정민(정문성)은 끊임없이 당시의 부대원들을 찾아다닌 결과 증인을 찾아낸다. 사실 당시의 중대원 전부가 오병장이 박일병을 죽인 걸 목격했던 것. 

물론 이건 드라마가 가진 다소 판타지적인 해결이지만, 그래도 이들의 감방생활이 어딘가 우리네 사는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여긴 시청자들로서는 잠시나마 시원한 느낌을 가졌을 게다. 어찌 보면 어딘가 소외되어 있어 더더욱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래서 갑질하는 세상에 함께 머리를 맞대 일격을 가하는 그 이야기에서 시청자들은 은밀한 동지의식 같은 걸 갖게 된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프레임 안에 담긴 감방 이야기를 통해 프레임 바깥의 세상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다. 거기에는 갑질하는 세상의 부조리한 현실들이 담기고, 그것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드라마의 방식으로 답답한 고구마 세상에 한 방의 사이다를 날리며 갑질 세상에 핍박받는 을들을 위로한다. 시청자들이 감방 이야기에 이토록 공감하고 매료될 수 있는 이유다.(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