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황금빛'의 역설, 재벌가 자매의 난 vs 똘똘 뭉친 서민가족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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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의 역설, 재벌가 자매의 난 vs 똘똘 뭉친 서민가족

D.H.Jung 2018. 2. 2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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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내 인생’, 어떤 가족의 삶이 진정한 ‘황금빛’인가

이건 형제의 난이 아니라 자매의 난이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해성그룹에 몰아닥친 위기는 노명희(나영희)의 동생인 노진희(전수경)와 그의 남편 정명수(유하복)의 계략에 의한 것이었다. 언론에 노명희가 과거 외도를 하다 딸을 잃어버렸고 나중에 딸을 찾았으나 바꿔치기가 됐다는 사실을 사진까지 포함해 내보내게 한 노진희의 진짜 목적은 아버지 노양호(김병기) 회장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마침 충격으로 쓰러진 노양호가 자신의 굳건함을 알리며 이사회에 참석했지만 이미 이사진들 대부분은 노진희 편으로 돌아서 있었다. 결국 노양호 대표이사의 퇴진이 이사회 투표로 결정되어버리고, 이어 노명희의 이사직까지 박탈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노양호는 무너져버린다. 이 자매의 난으로 인해 이제 노명희네 가족은 모든 걸 잃게 될 상황에 놓이게 됐다.

<황금빛 내 인생>이 가족드라마이면서 굳이 해성그룹 안에서 벌어지는 자매의 난을 담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건 ‘황금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듯한 해성가의 실상이 사실은 ‘핏빛’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자식이 부모를 밀어내고, 동생이 언니의 모든 걸 빼앗는다. 가족이라는 틀로 묶여져 있지만 이 가족은 모래알이다. 이런 상황을 일찌감치 보여준 건 노양호와 노명희였다. 그들은 가족이면서도 자식들에게 해서는 안될 일들을 자행했고, 그것이 부메랑처럼 자신들에게도 되돌아왔던 것.

반면 노진희의 계략 속에서 벌어진 자매의 난에 의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게 된 서태수네 가족의 모습은 정반대다. 한 때 모든 걸 포기하려 했으나 가족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온 서태수(천호진)는 이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한다. 과거 중소기업 대표로서 했던 경험들을 되살려 그는 기자를 찾아내 그가 노진희의 사주를 받았다는 증거를 확보해 최재성(전노민)에게 전한다. 결국 그 증거를 통해 서지안(신혜선)과 서지수(서은수) 두 딸의 신변이 노출되는 걸 막아내게 된 것.

이렇게 문제를 해결한 서태수네 집안은 가족들이 경사가 있을 때마다 갔던 불고기집에서 화기애애한 한 끼를 나눈다. 딸을 바꿔치기 하는 잘못을 저지른 양미정(김혜옥)에게 “가족이니까 서로 덮어주는 것”이라고 했던 서태수다. 그가 불고기집 앞에서 달려오는 두 딸을 향해 예전처럼 두 팔을 활짝 벌려 맞아주는 장면은 그래서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제 대장정을 걸어온 드라마가 막바지에 이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그 메시지가 분명해지고 있다. 드라마의 초반에서는 황금빛 세상에 대한 금수저 흙수저의 현실이 등장하고, 중반에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홀로 굳건히 서기보다는 서로를 탓하며 상처를 줬던 과거를 넘어서 새로이 저마다 홀로서기를 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제 마지막에 이르러 <황금빛 내 인생>은 어떤 가족의 삶이 진정한 ‘황금빛’인가를 제시한다. 

그것은 가족 구성원 각자가 홀로 서서 자신이 하고픈 일들을 해가는 것이고 또한 그렇게 독립적인 구성원들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가진 것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때론 미래까지 결정되는 굴곡진 우리네 현실에서는 결코 쉽지만은 일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에둘러 말해주고 있다. 제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가족끼리 물고 뜯는 그 삶이 무슨 행복이 있겠는가. 조금 가진 게 없어도 한 끼를 같이 하며 웃을 수 있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황금빛’이 아닐까. <황금빛 내 인생>은 그 역설을 말하고 있다.(사진: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