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미스티' 김남주, 희대의 악녀일까 남성권력의 피해자일까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미스티' 김남주, 희대의 악녀일까 남성권력의 피해자일까

D.H.Jung 2018. 3. 1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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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티’ 김남주에게 드리워진 두 얼굴의 의미

도대체 케빈 리(고준)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정말 고혜란(김남주)이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아니면 괴로워하면서도 고혜란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나선 남편 강태욱(지진희)일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고혜란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감방까지 갔다온 하명우(임태경)일까. 그도 아니라면 케빈 리의 외도에 가장 큰 상처를 입었던 그의 아내 서은주(전혜진)일까.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에서 살인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추측들은 드라마 제목처럼 ‘안개 속’이다. 여기서 특히 궁금해지는 건 고혜란이라는 인물이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남편에게 하명우의 존재를 설명하며 고교시절 금은방 사장을 살해한 이가 바로 하명우였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의 이 고백은 진실일까. 초반에 슬쩍 나왔던 당시 상황 속에서 하명우가 고혜란에게 “넌 앞만 보고 달려가라”고 했던 말은 마치 고혜란의 살인을 하명우가 뒤집어쓴 듯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고혜란이 강태욱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결혼까지 한 이유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고혜란은 어린 시절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는 남자들만 기다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고 한다. 그가 강태욱과 결혼한 건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강태욱의 희생이 점점 고혜란의 눈에 들어오고, 그것이 못내 아프게 느껴지며 사랑을 느끼게 되자 고혜란은 강태욱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자신의 결혼 이유가 깨졌기 때문이다. 

고혜란의 이런 모습은 자신의 욕망과 성공을 위해서는 모든 걸 이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만일 고혜란이 과거 살인을 직접 저질렀던 인물이라면, 그래서 자신의 성공가도를 막아서는 케빈 리까지 제거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그는 희대의 악녀가 맞을 것이다. 목적을 위해 사랑마저도 이용하는 인물이니.

하지만 드라마는 동시에 고혜란을 공고한 남성권력의 피해자이고, 그들 권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로 보여준다. 앵커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수한 편견과 유리천장을 깨야 했던 그는 이제 국장 자리를 놓고 장규석(이경영)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이 국장 자리를 제안하는 방송국 대표와 손을 잡게 된 건 자신에게 날아온 검찰의 기소 때문이었다. 케빈 리 살인죄로 기소된 그는 대표에게 강율 로펌이 자신의 사건을 맡아 무조건 이겨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대표와 강율이 고혜란을 과연 도와줄 것인가는 미지수다. 고혜란에 의해 한방을 먹은 그들은 그 권력 네트워크를 이용해 고혜란을 궁지로 몰아넣을 궁리를 하고 있다. 진실보도에 대한 남다른 소신을 갖고 있고 그것을 행동을 옮기는 것이 자신의 일라고 생각하는 고혜란은 그래서 공고한 남성 권력 시스템과 대결구도를 갖게 된다. 시청자들이 고혜란이 어쩌면 희대의 악녀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남성 권력과 싸우는 피해자로서 그 심경을 공감하게 되는 건 이런 양면이 이 캐릭터에 투영되어 있어서다.

과연 고혜란은 살인까지 저지른 희대의 악녀일까. 아니면 공고한 남성 권력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피해자일까. 그 안개처럼 애매한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고혜란이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커리어우먼들이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게 되는 양면적인 심경이 아닐까. 물론 극화된 이야기지만 <미스티>는 사랑도 성공도 쉽지 않은 커리어우먼들의 현실을 에둘러 담아내고 있다.(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