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전참시’ 사건, 도대체 어떤 의도가 이 사태를 만든 걸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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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참시’ 사건, 도대체 어떤 의도가 이 사태를 만든 걸까

D.H.Jung 2018. 5. 1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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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참시' 방송 파문, 고의성 없었다지만 의도는 다분했다

“이 사건에서 제작진의 ‘고의성’은 없었다는 조사 결과에 대해 많은 분들이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을 보이고 계십니다. 당연한 반응입니다. 저도 그 점이 이해되지 않아 조사위원들에게 몇 번이고 되물었습니다. 누구 한 사람의 고의적인 행동이 있었다면 MBC는 그에 대한 강도 높은 책임을 물음으로써 좀 더 쉽게 시청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사 결과는 누구 한 사람의 고의적 행위가 아니라 MBC의 제작 시스템, 제작진의 의식 전반의 큰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MBC로서는 한 개인의 악행이라는 결론보다 훨씬 아프고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결론입니다.”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에서 세월호 뉴스보도 장면을 자료화면으로 활용하고 거기에 ‘어묵’이라는 자막을 사용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마무리됐다. 결론은 ‘고의성’은 없었다는 것. 하지만 이 결론에 대해 대부분의 반응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공식 입장을 통해서 MBC 최승호 사장 역시 그런 반응에 대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 누가 세월호 보도 장면을 예능 프로그램에 재미를 위해 갖다 쓰면서 ‘의도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조사결과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밝혀진 것처럼, 분명 그 세월호 보도 장면을 선택하고 뒷배경을 흐릿하게 처리한 건 제작진이다. 물론 그 영상을 선택한 사람과 직접 만진 사람 그리고 그렇게 흐릿하게 처리된 영상을 허용한 사람은 다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모두가 다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는 분명 그 장면이 세월호 보도 장면이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최승호 사장도 공식 입장에 이 부분에 대한 침통한 심정을 담았다. “가장 큰 문제는 세월호 영상인줄 알면서도 ‘흐리게 처리하면 세월호 영상인 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해 해당 영상을 사용한 부분입니다. 타인의 아픔이 절절하게 묻어 있는 영상을 흐리게 처리해 재미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식이 문제입니다. 방송의 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편집하는 영상이 누군가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고민하지 않는 안이함이 우리 제작과정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입니다. 그리고 MBC의 시스템은 그 나쁜 영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막지 못했을 뿐 아니라 만들어진 뒤에도 걸러내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보도 장면이라는 걸 알면서도 재미를 위해 제작진이 그걸 활용했다는 걸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의문이 생긴다. 그런데 ‘고의성은 없었다’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지점은 ‘의도’가 있긴 있었는데 그 ‘의도’가 도대체 뭐였는가 하는 점이다. 

아마도 최승호 사장이 말하는 ‘고의성은 없었다’는 데 들어가 있는 의도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직접적인 조롱이나 비하의 의도를 말하는 것일 게다. 그런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작진은 왜 하필 그 아픈 장면까지 활용하게 된 걸까. 여기서 드러나는 건 다른 의도다. 그건 바로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어떻게든 ‘재미’를 주겠다는 그 의도이고, 그 ‘재미’를 위해서라면 뭐든 가능하다는 인식이 만들어내는 의도이다. 

그런데 왜 이토록 재미를 위해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행위까지 하는 그런 불순한 ‘의도’들이 생겨나게 된 걸까. 거기에는 ‘경쟁적인 환경들’이 존재한다. 시시각각 시청률로 환산되며 비교되는 방송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시선을 잡아끌려는 의도. 또 방송사 내부의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데서 생겨나는 도덕적 해이. 그런 의도들이다. 

아마도 이번 사태를 ‘일베’의 침투라고 결론 내리고 관련자를 처벌한다면 보다 명쾌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이 문제를 ‘외부의 적’이 만들어낸 사안으로 처리하면 ‘내부의 문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 일베에서 만들어진 영상을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자주 벌어지지만, 이른바 ‘일베 논란’ 같은 사태들이 방송사에서 반복되어 터져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는 내부의 구조적 문제도 적지 않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방송사 내부에서 그 경쟁구도 속에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때로는 상식을 넘어서는 것조차 둔감해진 채 부절절한 영상을 편집해 사용하는 그 행위가, 일베에서 벌어지는 일과 무엇이 다른가. 일베는 저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비뚤어진 경쟁적인 시스템 안에 이미 태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재미와 관심을 위해서는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들까지도 자행되게 된 환경. 

그래서 이번 사태는 일베가 아니라고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일베이고, 고의성이 없었다고 말하지만 이미 내재된 의도가 시스템 속에 이미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최승호 사장이 말한 ‘MBC의 제작 시스템, 제작진의 의식 전반의 큰 문제’는 그래서 MBC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방송사들이 이번 사안을 ‘먼 산 불구경’이 아니라 자신들 내부에 존재하는 ‘불씨’의 문제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사진: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