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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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되는 드라마에는 되는 요일이 있다

D.H.Jung 2008. 5. 14.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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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사극, 수목-전문직, 주말-가족극

드라마의 완성도가 뛰어나서 성공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드라마의 장르가 그 방영요일(편성)과 잘 맞아떨어진 결과일까. 최근 드라마들의 성적표를 보면 요일별로 장르가 굳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월화의 ‘이산’, 수목의 ‘온에어’, 그리고 주말의 ‘엄마가 뿔났다’가 그 드라마들이다. 물론 예외적인 것들(예를 들면 ‘조강지처클럽’같은)이 있지만 대체로 이 구도는 꽤 오래 지속되어 왔다.

월화의 밤을 사극으로 굳혀버린 장본인은 다름 아닌 ‘주몽’이다. 34주 연속 시청률 1위라는 괴물 같은 기록을 남긴 이 사극은 타 방송사들의 드라마들을 모두 침몰시키면서 월화의 밤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것이 현재 방영되고 있는 ‘이산’이다. ‘이산’과 함께 맞불 작전을 폈던 ‘왕과 나’ 역시 수위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사극의 밤을 장식했다.

물론 수목드라마로서 방영된 사극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태왕사신기’였지만 이것은 방영시기가 계속 늦춰지면서 공교롭게도 월화에 이미 배정된 ‘이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진이’가 평균시청률 21%, ‘쾌도 홍길동’이 15% 정도에 머무르는 시청률을 수목의 밤에 장식했으나 그것은 사극으로 봤을 때는 미미한 것이었다. 물론 완성도나 작품성으로 따진다면 나무랄 데 없는 사극이었지만 말이다.

‘쾌도 홍길동’이 높은 완성도에도 주목받지 못하고 있을 때, 수목의 강자로 등장한 것은 전문직 드라마 ‘뉴하트’였다. 전문직 드라마가 수목의 장르로 부상한 것은 ‘쩐의 전쟁’, ‘개와 늑대의 시간’같은 드라마들이 있었기 때문. ‘히트’(월화)나 ‘에어시티’(주말)같은 전문직 드라마가 있었지만 시청률면에서나 완성도 면에서 모두 참패했다. ‘뉴하트’의 분위기를 이어받은 것은 ‘온에어’이며, 이 분위기가 그대로 새로 시작되는 ‘스포트라이트’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강력한 경쟁자로서 ‘일지매’가 방영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역시 수목은 전문직 드라마일지, 아니면 사극이 그 틀을 깰 지 귀추가 주목된다.

주5일 근무제로 인해 주말드라마는 한동안 침체기를 겪어오다가 최근 들어 가족드라마를 연달아 내보내면서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며느리 전성시대’, ‘황금신부’의 바통을 이어받은 ‘엄마가 뿔났다’, ‘행복합니다’같은 가족드라마들은 주말밤을 온전히 주부 시청자들의 그것으로 만들고 있다. 가족드라마의 특성상 전통적인 시청자층을 확보하면서도 달라진 시대에 맞게 끝없이 변주하는 작금의 가족드라마들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주말의 장르로 군림할 것이라 예상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월화는 사극이, 수목은 전문직이, 그리고 주말은 가족극이 나누고 있는 현재의 드라마 상황은 바람직하기만 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장르의 요일별 패턴화는 작품 자체보다는 굳어진 편성에 더 힘을 실어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자칫 좋은 드라마들이 어울리지 않는 요일을 만나 주목받지 못할 가능성도 생기기 때문이다. ‘사랑해’나 ‘누구세요’같은 호평 받은 드라마들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이유 속에는 이 같은 편성의 패턴이 분명 작용한 바가 있다.

또한 이것은 요일을 떠나서 최근의 되는 드라마가 사극, 전문직, 가족극 이 세 가지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새로움을 시도하는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드라마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으며, 되는 드라마만 집중적으로 양산되는 이 상황은 자칫 드라마의 다양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 물론 이것은 시청률 지상주의가 낳은 결과이다. 그래서일까. 이 수많은 패턴들(요일이나 장르)을 넘어서 시청률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새로운 실험적인 드라마가 등장했을 때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른바 마니아 드라마란 그저 시청률에 실패한 드라마에 붙이는 수식어가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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