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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똑똑한 TV!

생활의 발견/생활의 단상 2008/06/02 09:37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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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TV에 대한 첫 번째 기억으로 무엇이 떠오르냐고 묻는다면 ‘자물쇠’라고 말할 것이다. 큰 맘 먹고 아버님이 모셔온(?) TV는 방 한 가운데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접근 불가능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당시 그 TV는 가구와 일체형으로 되어 있었다. 커다란 자물쇠를 풀고, 문을 양옆으로 연 후에야 그 속에 놓여진 TV를 볼 수 있었다. 교육열이 유난히도 뜨거웠던 그 시기, 이른바 ‘TV는 바보상자’라는 말에 아이들의 눈을 가리고 저희들끼리만 보려고 누군가 고안했던 고약한 아이디어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가린다고 안볼 우리들이 아니었다. 저녁 시간마다 TV가 있는 친구 집으로 달려간 아이는 탁 소리와 함께 브라운관의 작은 점이 한참 지나야 영상으로 바뀌는 그 시간을 못 기다려 발을 종종대곤 했다. 결국 집에 모셔둔 TV 때문에 밖을 전전하는 아이들에게 백기를 든 아버님은 저녁 두 시간을 허락한다는 조건 하에 자물쇠를 풀어내며 감금된 TV를 해방시켜주었다. 그 순간,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저 바깥세상과 유리된 채 살아가던 우리들의 눈도 해방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바보상자이기는커녕 온갖 진기한 세상의 일들을 바로 눈앞으로 가져다 주는 놀라운 알라딘의 마술램프가 아니었나 싶다.

프로레슬러 김 일 선수가 일본 선수에게 연실 박치기를 해댈 때마다 온 마을이 들썩거리고, ‘짜자자잔짜잔 -’하는 특유의 시그널송이 울리면 당연히 그 앞에 앉아 봐야만 했던 ‘수사반장’에 대한 국민적인 열광은 이 작은 TV의 위력을 어린 나이에도 실감하게 만들었다. 80년대 컬러TV시대가 열리자 바뀌어진 총천연색 화면은 그 때까지 무채색으로만 존재하던 세상에 색깔을 입히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신기하기만 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명암 속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흑백TV가 가진 그 아우라를 깨버린 것은 바로 그 컬러영상이 아니었나 싶다. 컬러시대와 함께 현란해진 광고들은 눈을 피곤하게 만들었으며 영상은 점점 대중화되었다.

때마침 등장한 리모컨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광고들로부터의 탈출을 가능하게 했다. 프로그램 전에 방영되던 수십 개에 달하는 광고를 피하기 위해 더 이상 TV 앞으로 가서 드륵 드륵 채널을 돌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저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채널을 바꿔주는 리모컨은 멀찌감치 놓여진 소파와 한 세트를 이루면서, TV 시청을 새로운 여가문화의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육백만 불의 사나이’나 ‘소머즈’에서부터 ‘게리슨 유격대’, ‘맥가이버’에 이르는 미국드라마 시리즈를 보는 것은 지금의 미드 열풍처럼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고, 영화는 꼭 영화관에 가거나 비디오를 빌려야 볼 수 있었던 당대에 ‘주말의 명화’는 안방극장이란 말을 탄생케 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부터 점점 보급되면서 거의 1년 주기로 업그레이드된 컴퓨터는 디지털 시대를 예고하면서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컴퓨터 모니터는 점점 TV를 향해 진화했고 결국 이 두 지점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IPTV가 등장했다. TV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 즉 TV 하면 입을 반쯤 벌리고 머리는 텅 비운 채 수동적으로 앉아서 거기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영상을 보고 있는 바보를 떠올리는, 그런 생각은 수정되어야 했다. 이제 자신이 보고싶은 영상을 스스로 선택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기본적으로 몰입하게 하기 위해 투명한 창처럼 구성되던 화면은 이제 선택해야할 아이콘들이 둥둥 떠다니는 마치 모니터 창과 같은 불투명한 창으로 바뀌었다. 이 정신분산의 매커니즘이 그래픽으로 구현된 창에서는 TV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뉴스를 확인할 수 있고, 보다가 무언가 해야할 다른 일이 생기면 화면을 멈춰놓을 수도 있다. 물론 지나간 장면을 되돌려보면서 좀더 분석적으로 TV를 바라볼 수도 있다. 이 시대에 TV가 비평의 대상이 된 데는 그 막강한 영향력에 대한 어떤 균형이 요구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디지털과의 결합에서 비롯된 바가 더 크다. 분석적인 시선들은 또다시 인터넷을 통해 나누어지고 그 힘이 모아져 TV가 독주하는 것을 견제한다. IPTV 시대의 TV란 이제 늘 대상으로서 시청자를 세워놓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시청자의 참여를 통해 집중되는 존재로 변모했다. 이른바 똑똑한 TV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동네에 한 대 있는 TV를 보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그 어린 시절과 비교해보면 지금은 실로 수없이 많은 TV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다. 거실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벽걸이 TV와 버리기에는 아까워 안방 한 구석에 놓아둔 옛날 TV는 물론이고, 버튼 하나로 유선TV로 변신하는(?) 모니터, 자동차에 떡 하니 자리하고 있는 네비게이션 속으로 들어온 DMB,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언제든 꺼내 TV를 볼 수 있는 휴대폰까지 이제 생활한다는 것은 바로 이 영상과 마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이 똑똑한 TV의 시대에 이제 바보상자는 저 과거의 서랍 속에 넣고 자물쇠를 채워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영상을 선택하고 읽어내고 의미를 분석하는 일은 앞으로 생활이 될 테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TV의 진화는 좀더 그것을 효과적으로 해줄 것이 분명하다. 그 진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TV의 눈을 우리의 눈으로 만드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어린 시절 채워진 자물쇠를 풀어 갇혀있던 TV와 눈을 해방시켰던 그 행위를 떠올리게 한다.
(이 글은 포스데이타(www.posdata.co.kr) 사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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