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왜 ‘식객’은 되고 ‘타짜’는 잘 안될까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왜 ‘식객’은 되고 ‘타짜’는 잘 안될까

D.H.Jung 2008. 10. 2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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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과 ‘타짜’, 드라마와 영화 그 엇갈린 반응 왜?

왜 같은 허영만 화백의 만화이면서 드라마 ‘식객’은 되고 ‘타짜’는 잘 안 되는 걸까. 또 아이러니 하게도 이 상황은 왜 영화에서는 거꾸로, 즉 ‘타짜’는 되고 ‘식객’은 안된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두 작품은 그 소재에 있어서 각각 적합한 매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즉 ‘식객’은 드라마가 더 적합했고, ‘타짜’는 영화가 더 적합했다.

‘식객’과 ‘타짜’, 그 다른 이야기 구조
‘식객’이 드라마에 더 적합했던 첫 번째 이유는 그 원작의 특징이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병렬적으로 이어놓았다는 데 있다. 따라서 시리즈로 방영되는 드라마가 이러한 에피소드들을 담기에 더 유리했고, 상대적으로 영화는 두 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 안에 그것을 소화해내기가 부담이 되었다. 영화와 드라마 모두 운암정을 사이에 둔 봉주와 성찬의 대결구도가 그 메인이 되고 그 뼈대 위에 소소한 이야기들이 살처럼 박혀있는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두고 볼 때, 이러한 반응의 차이는 서로 다른 매체적 속성에서 비롯된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타짜’는 그 이야기 구조가 ‘식객’과는 다르다. 물론 허영만 화백 특유의 취재에 근거한 리얼한 에피소드들이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주인공이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즉 편편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연결고리를 유기적으로 갖고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평경장 같은 한 인물의 이야기는 ‘식객’처럼 그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인물들과 계속 이어지게 되어 있다. 이러한 ‘짜여진’ 구조는 드라마처럼 늘여서 보는 것보다 영화처럼 압축적으로 보는 것이 더 흥미진진하기 마련이다.

영화여서 담을 수 있는 것, 드라마여서 못 담는 것
‘식객’은 그 소재 자체가 음식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TV 방영에 있어서 부담이 없다. 하지만 ‘타짜’는 다르다. 도박이라는 소재는 여러모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 위험성이 있다. 실제로 손가락이나 손목을 걸고 하는 도박은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영화는 이런 부분에서 자유롭다. ‘타짜’가 영화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저 홍콩도박 영화들이 가진 선악구도의 개념 자체를 뛰어넘는 도박의 세계를 리얼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물론 ‘타짜’에도 주인공이 있고 그와 대립하는 아귀라는 절대적인 악이 존재하지만, 주인공이라고 해서 선한 존재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저 도박이라는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이 있을 뿐이다. 영화 ‘타짜’는 바로 이런 캐릭터들이 존재했다. 아귀나 정마담은 악한 인물이면서도 이 타짜의 세계를 통해 보면 매력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드라마 ‘타짜’에는 분명한 선악 구도가 나뉘어져 있다. 고니(장혁)는 ‘착한 타짜’고 아귀(김갑수)는 ‘악한 타짜’가 된다. 고니가 도박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한 것이지 도박 자체에 매료된 탓은 아니다. 이것은 드라마로서 도박이라는 사행심리를 자칫 부추기는 결과를 피하기 위한 고민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 ‘타짜’가 영화의 그것처럼 리얼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분명한 선악구도를 그 안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타짜라는 소재는 매력적이다. 즉 도박의 세계 자체가 인간의 욕망을 끌어내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네 TV에 적합한 소재인지는 의문이다. 물론 시청연령을 제한하는 고지가 나오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방영되는 TV드라마에 대한 우리의 정서는 아직까지 도박과 폭력을 용인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식객’과 ‘타짜’, 모두 좋은 소재의 작품이지만 저마다 적합한 매체는 달랐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