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그사세’, 좋은 드라마는 힘든 세상인가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그사세’, 좋은 드라마는 힘든 세상인가

D.H.Jung 2008. 11. 17.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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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 없는 방송가 이야기, 그들 아닌 우리 세상

전문직 드라마라는 용어 속에는 그 전문직에 대한 막연한 동경 혹은 호기심이 숨어 있다. 특히 그 전문직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방송일 것이다. TV의 앞쪽에 앉아 TV 저편, ‘그들이 사는 세상’이 궁금한 것은 당연한 일. 매일 방영되는 드라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촬영되며, 그걸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것에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가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지대할 수밖에 없다.

이미 방영되었던 ‘온에어’는 바로 그 대중들의 방송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을 드라마로 포착했다. 연예계의 뒷얘기, 즉 카메라를 벗어난 연예인, 혹은 방송관계자들의 삶이라고는 하지만 ‘온에어’를 통해 비춰진 것은 여전히 그들이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온에어’가 보여준 것은 우리와는 다른, ‘그들이 사는 세상’이었다. 드라마 바깥의 그들 모습을 담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여전히 환타지를 자극하는 드라마였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이 보여주는 것은 그 다를 것만 같은 세상이 사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내겐 너무도 버거운 순정’편에서 주준영(송혜교)은 “우리 드라마를 한 마디로 한다면 그것은 ‘순정에의 강요’”라고 말하면서 2,30대에 만나서 순정에 목숨거는 한국드라마를 비꼰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드라마의 얘기만이 아니다. “순정은 개뿔!”이라던 주준영 자신 혹은 지금의 쿨한 세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녀는 결국 드라마 촬영 중간에 잠깐 시간을 내서 사랑하는 정지오(현빈)에게 달려가면서 솔직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단 한번도 순정적이지 못한 내가 싫었다. 이렇게 달려오면 되는데...’

‘산다’편에서는 배우 윤영(배종옥)의 어머니가 죽는 에피소드를 바탕에 두고 그 위에 수많은 삶의 풍경들을 중첩시켜놓는다. 술에 취해 평소에 쌓인 걸 풀기라도 하겠다는 듯 으르렁대며 “죽인다”고 싸워대는 손규호(엄기준)와 양수경(최다니엘), 아무리 엄마라도 빈집에 친구들과 들어와 밤새 도박과 술을 마신 걸 보고 “사는 게 싫어진다”는 주준영, 드라마를 찍느라 상가집에도 가지 못하는 처지를 “무슨 놈의 팔자가 인간도리도 못하고 살아”하며 한탄하는 중견배우들, 태연한 척 버티다 “극악스러워도 엄마가 있어 좋았다”며 결국에는 오열하고 마는 윤영까지. 그들 틈바구니 속에서 유독 삶의 행복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주준영과 정지오 커플의 모습은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어주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드라마를 만드는 자들의 힘겨운 삶과 현실과 때론 타협해야하는 고뇌, 그리고 순간 순간 빛나는 행복감을 그리면서 TV 저편에 사는 그들이 사실은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러니 그들이 사는 세상을 무언가 특별하고 드라마틱한 삶으로 요란하게 치장했던 방송국을 다룬 기존 드라마들에 비하면 심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덕목은 과장 없는 진정성을 갖고 포착하는 삶의 이야기다. 그것이 드라마라는 직업 속에서 느껴지는 단상들과 연결되기도 하고 때론 직업 상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서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매번 다른 부제를 갖고 스무 가지의 삶의 양태를 보여줄 20부작 ‘그들이 사는 세상’은 자극적인 자신들의 현실(자극적이고 경쟁적인 드라마 환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좋은 드라마가 살기 힘든 세상이다. 드라마를 통해 보여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