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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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혼자 빛나지 않는다

D.H.Jung 2006. 10. 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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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스타’ 변방에서 중심을 치다

‘왕의 남자’에서 광대들이 시대를 갖고 걸판지게 한 마당을 놀았다면, ‘라디오 스타’에서 이준익 감독은 이제 한물 간 스타를 매개로 이 시대의 주변인들을 끌어 모아 라디오라는 마당 위에 펼쳐놓는다. ‘왕의 남자’에서 장생과 공길이 저 왕궁이라는 본진으로 들어가 스스로 민중의 입이 되어주었다면, ‘라디오 스타’의 최곤(박중훈 분)은 영월이라는 변방으로 날아가 DJ의 마이크를 고단한 민중들에게 넘긴다. 한 예술인의 삶으로서 장생과 공길이 왕 앞에서도 거침없이 사설을 늘어놓았다면, ‘라디오 스타’에서 최곤은 라디오 방송이라는 규범적 공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솔직한 이야기들을 엮어낸다. 그리고 ‘왕의 남자’가 그러했던 것처럼 ‘라디오 스타’ 역시 변방의 민중들을 끌어안는다. 조금은 구닥다리 같은 영화, ‘라디오 스타’가 주는 어찌할 수 없는 감동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88년 가수왕 최곤, 그가 가진 유일한 것
그는 ‘왕년에’ 가수왕이었다. 지금은? ‘왕년에 가수왕’이었다는 사실을 팔며 살아가는 소위 말하는 한물 간 가수다. 그러니 그를 가수왕으로 대접해주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대마초 사건과 폭행 사건으로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에 등장한 그의 존재를 간신히 기억할 뿐이다. 모든 걸 잃은 그이지만 그를 진짜 괴롭히는 것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다’는 것이다. 그런 그를 가수왕 대접해주는 사람이 있다. 20여 년 간 일편단심으로 그의 매니저를 해온 박민수(안성기 분)다. 박민수는 여전히 최곤의 담배를 챙기고 불을 붙여준다.

최곤과 박민수의 관계는 어찌 보면 주종관계 같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 박민수는 최곤을 “담배 하나도 혼자 피우질 못하는” 인간으로, 그래서 자기가 보살펴줘야만 하는 불쌍한 존재로 인식하며, “우리 같이 물에 확 빠져죽자”고 하는 박민수의 말에 “그러면 우리 둘이 사귀는 줄 알어”라고 말할 정도로 둘의 관계는 밀착되어 있다.

주종관계에는 일종의 암묵적 동의가 숨어 있다. 그것은 그들이 공동운명체이며 현재의 어려움을 겨우겨우 버틸 수 있는 힘은, 최곤이 안간힘을 쓰며 지키려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 관계를 이상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만큼 서로를 기대 사람 인(人)자를 만들며 그 균형으로 겨우 서 있는 그들이 절박하다는 반증이다. 그들은 ‘88년 가수왕’이라는 이제는 허울뿐인 과거의 영광에라도 기대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다.

변방에서 중심을 치다
그래서 그들이 흘러흘러 밀려난 곳은 강원도 영월 동강이다. “동강은 동쪽에서 흘러서 동강일까? 아니면 동쪽으로 흘러서 동강일까”라고 박민수는 자신들이 서 있는 위치가 변방인지 중심인지를 묻는다. 서울이라는, 가수왕이라는, 전국방송라디오라는 중심은 최곤과 박민수를 영월이라는, 라디오DJ라는, 지방방송라디오라는 변방으로 몰아낸다.

그런데 변방으로 밀려난 이들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같은 처지의 동지들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아무도 스포트라이트를 주지 않았던 영월의 주민들이다. 최곤과 그들의 만남은 예고된 것이다. 첫방송에서부터 시작되는 방송사고. 하지만 그 방송사고는 이제 노골적인 최곤의 저항으로 이어진다. 방송의 권위를 없애고 마이크를 저 낮은 곳으로, 변방으로 넘겨준 것.

최곤에 의해 마당에 멍석이 깔리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다방 여종업원 김양의 멘트는 이 영화가 보듬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말해준다. 처음에는 “차 마시고 달아놓은 돈 갚으라”는 멘트로 김양에 대한 우리네 선입견을 드러내더니, 잠시 후에는 김양의 어머니에 대한 회한을 드러내며 그런 우리의 선입견을 부수어버린다. 그 순간 김양은 우리의 이미지 속에 있던 다방레지가 아닌, 저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한 인간으로 부각된다.

최곤은 사랑의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꽃집 청년을 위해 주민들에게 꽃을 그녀에게 배달해달라고 하고, 집나간 아비를 향해 울먹이는 한 소년을 대신해 최곤은 “당장 돌아오라”고 욕을 해댄다. 라디오 방송은 이제 아무 것도 아니었던, 아무런 기획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람들의 일상사로까지 파고든다. 백수아저씨의 취직상담을 해주고, 하다 못해 화투를 치며 ‘막판 쌍피’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할머니들에게 ‘판정’을 해주기도 한다. 이들이 목소리를 내자 방송은 사람들의 주관심사가 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모두 그저 우연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이것은 노골적인 최곤식의 저항이며, 이준익 감독이 담고자 한 변방의 목소리들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맹렬한 질타
그런데 그것은 무엇에 대한 저항일까. 여기에는 많은 은유와 해석이 가능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심에 대한 저항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심의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일까. 최곤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음악에 대한 것이다. ‘제대로 음악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며, ‘음악은 이제 상품처럼 기획되어 팔린다’는 것이다.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오며 사라진 음악과 기획사들의 대거출연은 우연이 아니다. 당장의 시류에 맞는 음악의 기획생산과 여기에 맞물린 비디오 시대의 도래는 음악인을 죽이고(Video kill the radio star), 상품으로 판매되는 음악인의 이미지들만 만들어냈다. 현 우리 가요계가 처한 문제들(음반시장의 위축, 가수들의 탤런트화)은 자본주의가 음악이라는 예술을 쥐게 되면서 생겨난 문제들이다(과거에는 예술을 하면 돈이 뒤따랐는데, 요즘은 돈을 벌려고 예술을 한다). 강석영PD(최정윤 분)가 술에 취해 “내가 왜 청취율에 목매는데... 당신들 같이 되지 않기 위해서야”라고 하는 말은 자본주의가 주는 공포(중심에서 밀려나면 끝이라는)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되자 본 상품은 사라지고 상품의 이미지, 즉 껍데기만 난무하는 세상이 열린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가요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또한 현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문제, 즉 생산의 주체와 소비의 주체 간의 괴리에 대한 은유로도 읽힌다. 이 영화는 이러한 괴리로 인해 늘 노동의 현장에 있으나 가난하게 살아가는 농민들, 도시빈민노동자들, 샐러리맨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된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고 만들어내는 노동은 본래 예술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여기에 돈의 논리가 개입되자 처절한 현실로 돌변한다. 그리고 이것은 최곤이 지금 시대에 소외된 이유이기도 하다. 돈을 벌어야 하는 시점에 예술 운운하며 가난하지만 고집스레 살아가는 것이 그의 죄다.

영화는 바로 그 점을 끄집어내 최곤과 박민수 사이에 기획사 사장을 끼워 넣는다. 돈의 논리로 무장한 기획사 사장은 박민수에게 “지금까지 매니저로서 해준 게 뭐가 있냐”며 떠날 것을 요구한다. 박민수가 “해준 게 없어 떠난다”며 돌아간 자리는 아내가 혼자 버텨내고 있는 노동의 현장(김밥장사)이다. 사람 인(人)자에 한 획이 떠나가니 나머지 한 획은 홀로 설 수가 없다. 사실 박민수는 그의 아내가 자신을 위해 그랬듯, 최곤의 현실을 대신 버텨준 인물이다. 최곤이 벌인 사건들을 해결하려 밖으로 뛰어다니고, 안으로는 최곤의 종이 되어 그의 자존심을 지켜준 박민수는 그저 매니저라는 직함보다는 형이 더 어울린다.

별은 혼자 빛나지 않는다
그래서 최곤은 가수로서의 재기를 얘기하는 기획사 사장에게 분노한다. 기획사 사장이 한 짓, 자신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형에 대한 무례에 분개한다. 형과 동생의 관계를 하루아침에 돈의 관계로 전락시켜버린 기획사 사장의 논리에 분개한다. 자신을 마지막까지 버티게 해준 진정한 음악인이라는 자존심을 뭉개고 기획된 가수라는 상품으로 그를 짜 맞추려는 기획사 사장의 의도에 분개한다. “다시 가수하고 싶어질까봐” 선선히 무대에 서지 못할 정도로 사랑하는 음악에 대한 모독에 분개한다.

그는 ‘중심의 논리’에 구토를 느끼며 변방에 남기로 한다. 그리고 박민수를 향해 라디오 메시지를 날린다. “형이 그랬잖아. 별은 혼자 빛나는 게 아니라고. 얼른 와서 나 좀 빛내줘. 같이 반짝반짝 빛나 보자구.” 최곤은 이제 알게되었다. 무엇이 진정으로 자신을 빛나게 해준 것인지를. 저 변방에서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노동의 현장에서 삶을 버텨내고 있는, 자신의 옆에서 늘 자신을 지켜봐 주는 그들이 자신에게 빛을 주었기 때문에 자신이 빛날 수 있었다는 것을. 여기서 상황은 다시 역전되어 이제 최곤의 빛은 박민수에게 날아간다. 다시 돌아온 박민수에게, 숨기듯 고개를 돌리고는 감동에 겨워 미소를 날리는 최곤에게 강한 동감을 느낄 즈음, 우리네 가슴속에도 자신을 빛내주었던 많은 주변의 빛들이 별처럼 떠오르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