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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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2008, 방송가 소재 드라마들의 성과와 한계

D.H.Jung 2008. 12. 2.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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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온에어’ vs MBC‘스포트라이트’ vs KBS‘그사세’

2008년 드라마의 특징 중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방송국을 소재로 한 드라마들이다. 그 첫 포문을 연 것은 SBS의 ‘온에어’이며 이어서 MBC의 ‘스포트라이트’가 방영되었고, 지금 현재 KBS에서 ‘그들이 사는 세상’이 방영되고 있다. 같은 방송가를 소재로 한 드라마들이지만 이들 3사의 드라마들은 약간씩 결을 달리했다. 어떤 점들이 달랐고 그것은 또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까.

‘온에어’, 판타지를 리얼리티로 뒤바꾼 영리한 전략
SBS의 ‘온에어’는 전략적으로 우수한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가 포착한 곳은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방송가의 맨 얼굴(리얼)이면서도 여전히 판타지를 놓치지 않는 그 지점이었다. 드라마(온에어) 속에 드라마(티켓 투 더 문)를 배치함으로써 ‘온에어’는 그것이 리얼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즉 드라마라는 허구를 찍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거꾸로는 진짜라고 강변하는 식이다.

하지만 바로 이 리얼로 포장된 ‘온에어’라는 드라마는 사실 판타지를 그려낸다. 여전히 드라마를 찍는 배우나 매니저, PD, 작가의 세계가 여느 보통사람들과 같은 그런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그 안에서 보여주고, 배우와 매니저와의 멜로, 작가와 PD와의 멜로를 그려내면서 판타지를 극대화시킨다. 드라마 속의 드라마를 끼워 넣어 한편에서는 리얼리티를 강변하면서도 동시에 판타지를 배치하는 이 전략으로 ‘온에어’는 더 큰 판타지성을 갖게 되었다. 즉 ‘사실 같은 판타지’가 구축된 것이다. 이를 통해 ‘온에어’는 시청률을 확보하면서도 완성도에 대한 비판을 비껴나갈 수 있었다. 방송가라는 소재를 적절히 이용한 영리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스포트라이트’, 좋은 소재, 하지만 미완의 드라마
반면 MBC의 ‘스포트라이트’는 보다 극화된 현장 속으로 시청자들을 이끌었다. 우리가 흔히 뉴스를 통해 보던 사건사고의 뒷얘기는 그 자체로 훌륭한 소재가 되었다. 게다가 ‘스포트라이트’는 초반부 이 특정상황, 즉 방송국 기자의 상황을 일반 조직상황의 이야기로 풀어내려는 노력을 보였다. 즉 방송국 내의 라이벌 구도나 서열 관계 같은 이야기를 통해 보통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한 편으로는 이들의 특화된 사건상황을 끄집어내 긴장감을 높이는 방식은 대단히 효과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문제는 구성에 있었다. 초반부 희대의 살인범 장진규 에피소드에서 지나치게 하이라이트를 보여주자 그 후의 에피소드들이 상대적으로 잔잔해져 버렸다. 물론 후에도 여러 번 기회가 있었지만 드라마는 그 때마다 정치적인 해결을 도모한다. 대신 불필요해 보이는 사회부 내의 경합구도를 자꾸만 내세우면서 드라마는 방향성을 잃었다. 에피소드의 병렬적 구성이 갖는 장점만 취하지 못하고 오히려 약점을 취함으로써 이 드라마는 어떤 상승곡선을 타지 못하고 말았다. 멜로 조차 애매해진 이 드라마는 가장 뜨거운 아이템을 잡았지만 불필요한 것들을 킬하지 못함으로써 미완의 드라마가 되고 말았다.

‘그사세’, 의미와 가치를 가졌지만 대중성을 확보 못한 드라마
현재 방영되고 있는 ‘그들이 사는 세상’은 이 두 드라마와는 다르게 리얼리티쪽에 더 많은 무게중심을 취하고 있다. 방송가 뒤편을 보여주되 대중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온에어’와는 다르게 ‘그사세’는 그저 담담한 시선을 유지한다. 거의 스케치에 가까운 영상들과 함께 ‘그사세’가 취하는 입장은 방송국의 드라마제작을 통해 우리네 인생을 은유하는 것이다. 즉 ‘그들이 사는 세상’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여주려는 것.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선택으로 인해 이 드라마는 거꾸로 그들이어야 제대로 알 수 있는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즉 대중들의 입장, 그들이 보고 싶은 입장을 끌고 가면서 동시에 그걸 통해 우리의 세상을 은유해내는 작업이었어야 했지만, 이 드라마는 아쉽게도 대중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그 입장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노희경 작가로서는 너무나 잘 알고 당연한 리얼리티겠지만 대중들은 생소한, 그 거리감에서 폭발적인 대중의 반응까지 다가가지는 못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방송가를 소재로 한 드라마 중 가장 의미로서는 가치가 있는 드라마인 ‘그사세’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대중적인 호흡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2008년을 뜨겁게 달군 이 장르 드라마들은 저마다 각각의 새로운 시도들을 보였지만 그만큼 한계도 드러냈다. 멜로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 세 드라마가 초반부의 의지와는 다르게 결구 멜로에 힘을 실어주고(혹은 실리고) 있다는 것은 장르 드라마로서의 시도들이 어느 지점에서부턴가 흐지부지해졌던가, 아니면 어려움에 봉착했던가 했기 때문이다. 방송을 캐스팅한 ‘온에어’는 초반부 화두처럼 드라마 제작의 문제점을 끄집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한 아무런 답도 제시하지 않는 한계를 보였고, ‘스포트라이트’는 한창 긴장감을 높여놓은 사건을 정치적 해결로 덮어버리는 한계를 보였다. 그리고 ‘그사세’는 그 좋은 의도와 작품에도 불구하고 대중들과 좀더 호흡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르랴. 방송가를 소재로 한 이들 드라마들의 성과와 한계는 앞으로 그 계보를 잇는 드라마들의 가능성을 더욱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아쉬움이 많지만 흥미롭고 의미 있는 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