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최민수를 죄민수로 만든 것은? 본문

옛글들/네모난 세상

최민수를 죄민수로 만든 것은?

D.H.Jung 2009. 2. 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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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수 사건, 소문의 시대가 보여준 불길한 징후

“노인을 넘어뜨리고 발로 밟았다.” “노인을 차 앞에 매달고 5백 미터를 질주했다.” “노인을 보조석에 태운 채 칼로 위협했다” 최민수 사건의 당시 소문은 흉흉하기만 했다. 언론은 소문의 진상을 알아보기는커녕, 자극적인 내용들로 소문을 확대했다. 피해 당사자인 최민수는 그 과정에서 사건의 진실과는 상관없이 죄민수가 되었다. 그는 이 일파만파의 소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현실
‘MBC 스페셜’에서 보여진 대로, 최민수는 우리나라의 정서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잘잘못을 떠나 어쨌든 노인과 관련된 일”이라고 한 최민수의 말은 그가 왜 무릎까지 꿇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결국 무혐의로 판결나면서 모든 것들이 그저 소문에 불과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그 사실은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 소문을 확대했던 언론들마저 무혐의에 대해서는 조그마한 단신으로 처리했다.

소문의 그물 속에 포획된 공인은 세상에 지쳤고 그래서 산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소문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그의 행보 또한 기행으로만 조명되었고 자신을 벌주는 듯한 행동으로 인식되면서 오히려 소문을 사실처럼 믿게 만들었다. ‘MBC 스페셜’에 오랜만에 얼굴을 드러낸 최민수는 비쩍 말라있었지만 눈만은 산으로 들어가기 전보다 편안해져 있었다. 고독해 보였지만 자신에게 떨어진 이 난데없는 형벌을 스스로 감당하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MBC 스페셜’이 포착하려 한 것은 한 연예인에게 떨어진 루머에서부터 시작해, 그 소문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확대되고 전파되며 또 완전한 사실로 굳어지는지 그 과정에 대한 것이었다. 좋은 소문과 나쁜 소문의 전파 속도를 측정하기 위해 치러진 실험을 통해 나쁜 소문의 전파가 더 빠르고 폭넓게 진행된다는 것을 프로그램은 보여주었고, 또 불안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소문도 더 확산된다는 것 역시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최민수 사건, 과연 그만의 일일까
‘MBC 스페셜’이 최민수의 소문을 추적하기 위해 보여준 실험들은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좋은 소문보다 나쁜 소문이 더 빨리 확대된다는 실험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왜 그다지도 선플보다 악플이 인터넷을 가득 메우는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IT강국으로서 속도의 시대에 편승하고 있는 우리들은 또한 그 정보에서 누락되는 것을 불안하게 생각함으로써 우리도 모르는 사이 소문의 한 쪽을 부풀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굳이 포지셔닝 이론을 꺼내지 않아도, ‘대중들은 사실 그 자체가 아닌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소문은 바로 이 지점, 즉 최민수의 사실이 아니라, 최민수라는 캐릭터라면 했을 지도 모를 가상의 시나리오에 더 집중함으로써 확대 과장된다. 물론 카리스마의 아이콘을 가진 캐릭터로서의 최민수와 진짜 최민수 사이의 간극이 만들어내는 소문이란 말 그대로 소문일 뿐이지만, 이미지를 생명으로 살아가는 연예인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이미 망가진 이미지는 회복하기가 좀체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정보의 시대가 말해주는 어두운 면, 즉 소문의 시대를 예고하는 불길한 징후인지도 모른다. 소문의 시스템이 거의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는 이 상황 속에서 이것이 어찌 최민수만의 일로 멈출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