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소녀’와 ‘꽃남’에 꽂힌 중년들, 왜? 본문

옛글들/네모난 세상

‘소녀’와 ‘꽃남’에 꽂힌 중년들, 왜?

D.H.Jung 2009. 3. 2. 07:18
728x90

청춘이 영원한 향수가 된 사연

지금 TV에 ‘꽃보다 남자’와 소녀시대는 마치 공기처럼 퍼져있다. 그것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거의 어김없이 패러디의 대상이 되고 있어, 무심코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그 영상들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 패러디 영상들은 인터넷 속에 말 그대로 산재해 있고, 게다가 일반인들이 경쟁하듯 만들어낸 UCC는 시선의 골목들을 장악하고 있다. 라디오도 예외는 아니다. ‘꽃보다 남자’는 OST의 형태로 수없이 반복되어 노래 속에 영상을 환기시키고, ‘소녀시대’의 ‘gee’ 역시 그녀들의 풋풋한 춤동작을 보지 않고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반복적으로 라디오를 채우고 있다.

특기할만한 것은 이들에 쏟아지는 관심의 축이 젊은 층에서부터 중년층으로까지 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금 이들이 각종 프로그램 속에서 중년 출연자들과 어떻게 교감하고 있는가를 들여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한 소녀시대의 윤아는 패밀리 남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데, 거기에는 유재석이나 윤종신, 김수로 같은 중년들의 열광적인 반응도 포함되어 있다. ‘오늘밤만 재워 줘’에 출연한 ‘꽃보다 남자’의 김준은 아줌마들의 노골적인 사랑(?)을 받는 모습을 연출한다. ‘우리 결혼했어요’에 정형돈과 가상부부로 나오는 소녀시대의 태연은 그 털털한 모습으로 중년남성들을 사로잡고 있다.

과거 젊은 세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아이돌에 대한 팬덤 현상은 작금에 이르러서는 그 세대의 벽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구매력 있는 중년 여성들이 드라마 등을 통해 젊은 스타들의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고, 이른바 걸 그룹들의 공연장에 삼삼오오 모여드는 아저씨 팬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되자 최근에는 아예 중년층을 그 소구대상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심심찮게 보여지고 있다. 이것은 주 시청층의 연령대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TV 프로그램들과 만나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중년들의 소녀들과 꽃미남들에 빠져드는 요인은 단지 달라지고 있는 팬덤 현상과 TV 환경으로만 설명되기에는 어딘지 부족하다. 이것은 작금의 불황 상황과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소녀들과 꽃미남들에 대한 열광 또한 불황이 가져온 복고 트렌드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의 어려움이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게 만드는 데서 복고가 탄생한다면, 소녀들과 꽃미남에 대한 추억은 청춘에 대한 추억과 다르지 않다. 그 발랄하고 탱탱했던 시절,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어려움으로 느끼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청춘이라는 영원한 샘물에 대한 갈증은, 지금 같은 시절에 더 간절하기 마련이다.

물론 이 청춘은 되돌려질 수 없다. 따라서 이 청춘을 판타지화하는 소녀들과 꽃미남들에 대한 반응은 더 열광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TV 드라마 같은 프로그램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대변하는 중년 캐릭터들이 성공의 잣대 위에 그 판타지를 그려내던 것이 이 극심한 불황을 맞아 공감의 폭이 줄어든 것에서도 기인한다. 청춘은 성공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판타지가 된다. 소녀들과 꽃미남에 꽂힌 중년들. 그것은 거꾸로 어려운 현실의 또 다른 모습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