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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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블로거의 시선

박중훈쇼, 패배가 아니라 실패다

D.H.Jung 2009. 3. 2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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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쇼’가 결국 4개월만에 문을 닫는다고 하는 군요. 한없이 떨어지고만 있는 시청률을 타개해보고자 개편에 맞춰 집단 MC체제로의 전환을 제안했지만 박중훈은 이를 고사하고 하차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결국 '박중훈쇼'에 박중훈이 없게되니 폐지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기사로 나온 걸 보니, '박중훈, "패배를 깨끗이 인정한다"-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는 제목이 눈에 띄는군요. WBC가 막 끝난 시점이라서 그런 것이었을까요. 박중훈씨는 왜 굳이 '패배'라는 단어를 썼을까요. 적당한 말은 '실패'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말입니다.

'패배'라면 누군가와 대적을 했다는 말이고, 그 상대는 다름아닌 '박중훈쇼'가 그토록 시청률 하락의 원인으로 애기하던 '자극적인 토크쇼', '집단 MC체제 토크쇼', '불친절한 토크쇼'로 상정될 것입니다. 실제로 '박중훈쇼'의 제작진들은 실패의 원인으로, 1인 MC체제 토크쇼가 시기상조였고, 작금의 자극적인 토크쇼들과는 다르게 친절한 토크쇼를 지향했던 점, 형식에 있어서 작금의 스피드에 경도된 토크쇼들과는 다르게 심도 있는 대화에 중점을 두고 느림과 여백의 미를 살리려 했던 점 등을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패인 분석이 온전한 것인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진정 '박중훈쇼'가 1인 MC체제의 한계 때문에, 혹은 너무 친절했기 때문에 또 느림과 여백의 미를 표방했기 때문에 4개월만의 폐지라는 결과를 가져왔을까 하는 점입니다.

1인 MC체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불황기를 맞아서 집단 MC체제가 갖는 비효율성(비용이 많이 들죠)은 늘 문제로 제기되어 왔던 일이고, 또 현재 SBS에서는 '강호동쇼'가 추진되고 있다고 하죠. 나름대로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1인 MC체제가 문제가 아니라 그 1인이 누구냐가 더 문제가 아닐까요.

'친절한 토크쇼' 역시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친절함과 재미는 반댓말이 아니죠. 친절하면서도 충분히 재미있게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유재석이 진행하는 '놀러와' 같은 토크쇼는 친절하면서 재미도 있죠. '상상플러스' 역시 '친절한 4형제'라는 컨셉트로 친절을 표방하고 있지만 나름대로의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요는 친절하냐, 친절하지 않냐의 문제가 아니라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느냐, 아니면 저들이 원하는 것만을 보여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느림과 여백의 미는 진정으로 그 느림과 여백이 아름답게 느껴져야 느낄 수 있는 것이죠. 즉 토크의 심도가 깊어지고 진정성이 뚝뚝 묻어날 때는 카메라와 진행자는 멈춰서서 침묵하며 그 여백까지 담아내는 것으로 그 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답 같은 말들만 나열하는 이야기 속에서 심도와 진정성은 느껴질 수 없습니다. 의미없는 대화가 되고 말죠. 느림과 여백은 지루함으로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중훈쇼' 폐지에 즈음해, '패배'라는 말이 적절하지 않은 것은 이 쇼의 문제가 이처럼 외부적인 것(이를테면 토크쇼의 환경, 사회적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쇼 내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박중훈쇼'의 '패배' 아닌 '실패'는, 바로 이런 자신의 문제에 귀기울이지 않고 외부의 문제로 탓을 돌리는 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릅니다.